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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두향아 너는 '辛酸'의 뜻을 아느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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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5)

[千日野話]두향아 너는 '辛酸'의 뜻을 아느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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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는 물었다.
"너는 신산(辛酸)하다는 말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두향은 분매를 한참 들여다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추위가 주는 두 가지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맵다는 것(辛)은 몹시 고통스런 한기로 살이 어는 느낌일 때 따갑기까지 한 것을 표현한 듯하고, 시다는 것(酸)은 그 고통이 깊어져서 깊숙이 배어드는 시린 느낌을 말하지 않나 싶습니다. 뺨은 따갑게 맵고 코는 시려서 얼어붙는 것이 신산이겠지요. 찬 바람에 뺨과 코를 내놓고 있는 사람처럼, 겨울에 제 꽃송이를 피워올리려는 매화도 추위의 날카롭고 집요한 기운과 싸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옵니다."
"그래. 나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아버지를 잃었고, 편모 슬하에서 아버지 없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꿋꿋하게 사는 법부터 배웠느니라. 모친은 내게 고통을 들여다보라고 말씀하셨지. 괴롭고 아프고 서러운 것은 모두 뜻이 있으며, 사람을 성장시키는 스승이라고도 하셨지."
"아, 나으리의 매화의 도(道)가 소시(小時)부터 시작된 것이군요. 저 꽃이 추운 날 저렇게 벙그는 것은, 추위를 몰라서가 아니라 제 몸 속으로 키운 신산한 기운으로 열기를 만들었기에 그것을 견딜 수 있는 내력을 지녔기 때문이라 들었습니다."
"두향아. 내가 너를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닌 듯 하다. 저 군자화(君子花)가 마치 해어(解語)하듯 말을 하는구나."
"부끄럽사옵니다."
"신산이라는 것은, 네가 말한 대로 추위로 인한 고통 그 자체를 가리키지만, 매화에게 신산함은 바로 열매를 익히는 비결이기도 하지. 매실(梅實)이 지닌 맵도록 시린 기운은 바로 가장 추운 날의 정기를 담은 게 아니더냐. 이것이 나무 열매 중에서 가장 맛이 신 까닭은, 눈 속에서 피어나 입하(立夏)가 지나야 그 열매를 따기에, 동방(東方)의 목(木)기운이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어 산미(酸味)가 완전하기 때문이란다."
"아, 그렇군요. 매실은 바로 추위를 익혀 담은 열매로군요. 그래서 그렇게 시면서도 달군요."
"그렇지. 주자가 그토록 매화를 좋아한 것이나, 두보가 그것에 열광한 것은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에 반한 것이 아니라, 음(陰)을 양(陽)으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을 주목한 것이지. 매화가 처음으로 꽃의 정기를 낼 때는 동짓날이라고 하지. 대설과 소한 사이. 태양이 가장 남쪽에 있어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란다. 말하자면 음(陰)이 가장 성한 날이지. 이날 매화는 가느다란 양(陽)의 기운을 모아, 꽃의 정기를 만든다고 하지. 철부지(不知)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꽃들에 앞서서 태양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추위에 꽃봉오리를 얼리면서 저 홀로 봄을 피워올리도록 목숨지어져 있기 때문이란다. 매화는 동지부터 온 몸에 화의(花意)를 돋우면서 겨울 내내 신산한 추위와 싸우는 것이지. 어쩌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이 꽃이 추위를 밀어내서 봄이 오는 것인지도 모르지."
"와, 정말 멋진 꽃이군요. 음의 시절에 양을 준비하고 전쟁을 치르면서 그것을 꽃으로 만들어내는 힘."

"매화는 주자(1130~1200)의 꽃이라고도 하지. 주자학의 뼛속에는 매화가 들어있단다. 그 분은 이렇게 읊었지. '진실한 마음을 스스로 지켜 티끌 인연과는 거리를 두노라. 천부적으로 빼어나니 바람 이슬 눈 얼음 따윈 개의치 않네. 속된 도리(桃李, 복사꽃과 오얏꽃)가 부박한 벌 나비를 끌어들인들 어찌 이에 비기랴.' 이것은 단순히 꽃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철저한 학문과 수양의 지향점을 다룬 인격화(人格花)를 노래한 것이지. 그는 사람도, 사람의 마음도, 한 송이 매화라고 여겼던 사람이지. 그분은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했지."
퇴계는 나즉히 시를 읊는다.

"개울가에 겨울매화 이미 피었을텐데
벗은 매화 한 가지 꺾어보내지 않는구려
하늘 끝인들 어찌 꽃이야 없겠습니까
무심한 그대 향해 술잔을 듭니다
溪上寒梅應已開 계상한매응이개
故人不寄一枝來 고인불기일지래
天涯豈是無芳物 천애기시무방물
爲爾無心向酒杯 위이무심향주배"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이 늙은이의 동무가 되어주겠느냐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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