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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김광균의 '노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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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먼 기적소리 처마를 스쳐가고/잠들은 아내와 어린 것의 베개 맡에/밤눈이 나려 쌓이나 보다./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 맞으며/항시 곤두박질해 온 생활의 노래/지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먹고 산다는 것,/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등불을 켜고 일어나 앉는다./담배를 피워 문다./쓸쓸한 것이 오장을 씻어 나린다./노신이여/이런 밤이면 그대가 생각난다./(……)

김광균의 '노신' 중에서

■ 노신(1881~1936)은 어린 시절엔 퍽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멀어져버렸다. 시골집 책장에 꽂혀있는 세계단편전집에서 몇 번이고 읽었던 '아큐정전'은 나 스스로를 그 바보 같은 '아큐'와 혼동하게 했다. 뒤늦게 노신(魯迅)이 이 작가의 본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원래는 주수인(周樹人)). 노신은 '느림과 빠름'이란 의미다. 그가 속도의 문제를 이름으로 삼은 것은, 사회변화의 문제는 옳고 그름 만큼이나 속도(완급)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 아니었을까. 김광균은 노신의 삶에서 무엇을 읽었을까.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살 먹은 사내는 잠든 아내와 어린 것을 보며 담배를 문다. 쓸쓸하고 힘겨운 날에, 문득 상해의 뒷골목에 앉은 노신을 생각한다. 혁명에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세상을 모색했던 사람. 지금은 느림(魯)의 시절이니 조금 쉬어가자. 그러면 다시 빠름(迅)의 시절이 오지 않겠는가. 요즘 말로 하면 '좌절금지'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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