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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빈섬의 스토리-한끼의 역사]점심드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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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것 없던 시절 굶주린 마음에 점 하나 찍는 기분으로 요기하던 식사
상다리가 휘어지는 요즘의 점심, 옛 소박함과 가벼움을 회복하는 건 어떨까


[이빈섬의 스토리-한끼의 역사]점심드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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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점심은 없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고교 시절 국어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오늘과 어제는 모두 순한글인데, 내일(來日)은 한자어로 쓰니 우리에겐 없는 게 아니냐는 말씀이었다. 그 선생님을 흉내내자면 우리에게 점심은 없다. 아침과 저녁은 우리말인데 오직 점심(點心)만은 한자에서 왔으니 그럴 만하다.

아침과 저녁은 그런 점 말고도 점심하고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예를 들면 아침은 하루의 어느 때를 주로 가리키는 말이고, 저녁 또한 그렇다. 그런데 그 '때'를 가리키는 말이, 그 때에 먹는 '끼니'를 가리키는 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아침이 밝았다고 말하면, 우린 '아침에 먹는 밥'이 밝았다로 결코 오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점심은 먹는 게 우선이다. 점심을 시간을 의미하는 말로 쓸 수도 있으나, 그때는 '점심때'라고 굳이 밝혀주거나 특별한 용례에서만 쓴다. 그러니까 아침과 저녁은 시간이며, 점심은 식사할 음식이거나 식사 행위이다. 왜 그럴까.옛사람들의 식사 횟수는 대개 하루 두 번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해가 뜰 무렵 한 끼를 먹고 해가 질 무렵 또 한 끼를 먹는다.
농경시대로 접어들던 삼국시대의 왕가에서는 하루에 삼식을 했다. 그 한번 더 먹는 끼니는 바로 권력의 표현이었다. 귀족들은 평상시에는 하루 두 끼를 먹고, 형편이 어려울 때는 한 끼를 먹었다. 귀족들이 그랬으니, 보통 사람들이나 천민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지 짐작이 간다. 고구려, 백제, 신라 때만 해도 하루 두 끼를 먹는 것은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표시였다. 그런 사정은 고려 때도 달라지지 않는다. 고려도경의 기록을 보면 호텔에 묵는 외국 사신에게는 하루 세 끼를 대접했다. 융숭한 대접이다. 고려의 보통 사람들은 두 끼를 먹었다. 그 전시대보다는 약간 식량 사정이 나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식량 사정이 나아진 것은, 그 보통 사람들의 일거리가 많아졌다는 의미도 된다. 농토가 정비되면서 먹거리의 형편이 꾸준히 개선된 결과다. 그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규칙적인 노동이 늘어난다. 점심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 일을 하다 보니 생긴 시장끼를 면하기 위해 개발된 간이 식사다. 그러나 세끼를 충분히 먹는 상황은 아니었다. 먹었다는 기분을 내기 위해, 마음(心)에 점을 찍듯이 가벼이 먹는 참. 그게 처음의 점심이었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점심(들밥)'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점심(들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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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순구식을 아십니까

그러나 내가 말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안정기(安定期)의 평균 수준의 식사에 관한 이야기다. 근대 이전의 삶이란, 대부분 주린 삶이었다. 기민(饑民)은 널려있었다. 하루 한 끼만 제대로 먹어도 풍족하다고 여겼던 시절이었다.

삼순구식(三旬九食)이란 말은 이틀 굶어 하루 한 끼 먹던 시절의 풍경이다. 거기에서 아침과 저녁이 모자라 점심을 챙긴다는 소리는 호강에 받쳐 요강에 빠질 태평가였다. 나라의 많은 정책들은 주린 백성들의 배를 채우는데 맞춰져 있었지만, 중간의 탐관오리들은 사흘 만에 숟가락 드는 그 위에 올려질 밥알들을 빼돌리는 배달사고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아침이 곧 아침밥이 된 것, 저녁이 곧 저녁밥이 된 것은, 저 주린 정신이 퀭한 눈을 뜨고 중얼거리던 말들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아침이 지나갔으니 아침을 먹은 게지. 저녁을 떼웠으니 저녁을 먹은 게지. 그렇게 허기를 속이며 시간을 세어나갔기에 아침이 아침밥, 저녁이 저녁밥이 된 건지 모른다. 그런 이들에게 점심은, 그저 어느 제삿집이나 잔칫집에서 건너온 몇 조각의 떡을 베 무는 이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중국인들 달랐으랴. 맹자가 '늘 생산하는 것이 있어야(恒産), 백성들이 안정된 마음을 갖는다(恒心)'고 통찰한 것은 그의 혜안이기도 하지만, 아주 당연히 위정자가 공들여야할 철학이기도 했다. 영화 속의 동막골 이장도 '마이 멕이는 거'를 말하지 않았던가.

중국의 톈신(點心)은 아침과 저녁 사이의 간단한 끼니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지만, 다른 의미로도 쓰였다. 황실의 파티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며 이어졌는데, 그때 이동을 한 뒤에 다음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에 간단히 군것질로 먹는 음식이 바로 톈신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중국의 점심은 좀 더 호사스런 느낌이 있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것은, 식사와 식사 사이 잠깐 심심해진 사이, 배부르지 않도록 조절하며 먹는다는 의미로 바뀐다. 로마의 테이블에서는, 먹었던 것을 토하고 와서 다시 먹는 식사법이 있었다던가. 톈신은 그런 배부른 자리의 애교어린 간식이다. 중국요리에 관한 고서(古書)는 톈신을 좀 다르게 말하고 있다. 대개 요리는 차이(菜)와 톈신으로 나눠진다. 차이는 대개 나물류로서 찬이나 술안주 등을 가리킨다.

톈신은 간단한 음식을 가리키는데, 때를 가리지 않고 소식(小食)으로 조금조금씩 먹는 음식을 뜻한다. 요즘 요리에서는 간단한 주식이 되는 녹말 위주의 일품요리와 함께, 맛이 달콤한 지단가오, 쑤빙, 바바오판, 바쓰, 미첸 등 과자와 음료 모두를 그렇게 부른다 한다.

◆ 15, 16세기에 생긴 말, 점심

우리나라에 점심이란 말이 생겨난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선종(禪宗)에서 공복에 점을 찍듯 먹던 간식이 불교 문화의 수입을 타고 중국으로부터 넘어오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한다.

불교용어였던 심이 문서에 보이는 것은 16세기의 순천김씨 언간이다. 15세기 무렵에 '아츰'이란 말이 보이고 17세기에 '져녁'이라는 말이 나타나는데, 심은 그 중간에 있다. 이 시기들이란 단지 아침과 저녁, 그리고 점심이란 말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을 가리킬 뿐, 아침 끼니와 저녁 끼니, 그리고 점심 끼니가 시작된 때를 말하는 정보로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귀족이 하루 두 끼를 먹던 시절에도, 보통 사람들은 정기적인 식사라는 개념의 '끼'라는 것은 상상도 못한 채, 생기면 먹고 없으면 굶던, 정글의 시간을 보냈을 지도 모른다.

비교적 장황하게 점심이란 개념과 말이 생겨나는 무렵을 뒤돌아보는 것은, 그것의 첫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포식을 진정시키는 의미에서의 가벼운 식사일 수도 있지만, 대개 점심이란 굶주린 시간을 속이기 위해 겨우 먹는 흉내나 내던 관행에서 나왔다는 점에 고개를 끄덕이리라. 말하자면 요즘처럼 점심을 가장 잘 차려먹고, 사교의 장(場)으로 활용하는 관습은, 점심이란 말의 취지라든가 그것이 생겨나던 무렵의 소박함을 한참 벗어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 시절에 그랬으니 우리도 그런 궁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이 풍요로운 점심이 우리에게 과연 축복임에 틀림없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옛날로 치면 황제의 파티를 벌이고 있는 셈인데 왜 투덜거리려고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 다산선생도 허기만 속이라고 했거늘…

다산 정약용은 아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먹는 것이란 허기를 속이면 될 뿐 그 이상을 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못박는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혀를 지나 속으로 들어가면 모두 똑같은 것이 되니, 혀끝에 농락 당하지 말고, 더 귀한 가치를 찾는데 삶의 에너지를 쓰란 얘기다. 먹을 것 없던 시절에 굶주림과 거친 식사를 견디는 노하우라고 읽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말에는 어떤 우렁찬 진실이 있다. 우리가 날마다 쓸어넣는 점심들은 너무나 많고 너무나 기름지다. 마음에 점을 찍는 게 아니라, 영양을 과적하여 뱃살에 층을 지우는 '대공사(大工事)'이다.

상다리가 가히 휘어질 만한 비만의 점심을 생각하노라면, 어느 러시아 학자의 충고가 생각난다. 신이 풍요로운 문명을 이룩한 인간을 징벌하는 가장 타격적인 방식은 바로 풍요 자체로 징벌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급진행되고 있는 비만문명은, 풍요의 징벌이다. 우리가 메스를 들이대면서까지 살을 깎아내려고 고심하는 까닭은, 그 삐져나온 살들의 출렁거림에 질병과 죽음이 서성거리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식당들은 집에서 쏟아져나온 인류들에게 '거대한 점심'을 유혹하고 강추한다. 비만이 만들어내는 몸의 기형은, 우리가 점심이란 식사를 기형적으로 쓰고 있는데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점심의 소박함과 가벼움을 회복하는 일. 그건 옛날의 주림으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아니라, 너무 과도해진 무엇을 바로잡아 가운데쯤으로 보내자는 얘기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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