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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신문사 편집국 부서 이름에 대한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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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의 부서 명칭들은 흥미롭다. 거기엔 특정 언어와 개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우대가 작동하고 권력적인 냄새까지 난다. 그러나 그런 것 말고 나는 단순무식하게, 신문사의 부서들을 두 가지로 나눠보기로 했다. '적(的)' 자가 붙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접미사 적(的)은 명사를 형용사로 만드는 구실을 하는데 일본식 어법이라고 한다. 영어의 '-tic'을 그대로 음역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확실치는 않다.

정치부. '정치적'이란 말이 있다. '정치'와 '정치적'이란 말은 명사가 형용사로 바뀐 점 이외에도 의미상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이란 말에는 '진정하지 않은' 혹은 '상황이나 여건, 혹은 사회적 역학 등을 고려한'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정치적인 발언은 진심이나 진실을 담은 것이 아닌, 가식적인 발언이란 의미가 숨어있다. 여하튼, 정치부는 '정치적'이란 말을 새끼 치고 있으니 대우받는 부서라 할 만하다. 사회부. '사회적'이란 말이 있다. 사회적이란 말은 비교적 중립적이다. 사교적이란 말로 쓰일 때도 있다.
경제부. '경제적'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경제 전문 분야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때로 '절약하는'이란 의미를 담는다. '경제적'이란 말이 바로 '알뜰한'으로 연결되는 것은 건전한 경제관은 아닌 듯하다. 무엇이든 아껴야 했던 전 시대의 강박이 거기에 숨어있을 것이다. 요즘은 '경제적'이란 말이 가끔 '효율적' 혹은 '돈을 밝히는'이란 말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시장경제가 뿌리내린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효율 만능이 반드시 경제의 모든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닌 만큼, 그런 의미 또한 하나의 유행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 금융부. 요즘 와서 뜨는 분야이기는 하나 금융적이란 말을 낳진 못했다. 말이 문명의 변화를 못 따라가나 보다.

산업부. 산업적이란 말은 좀 낯설다. 유통팀. 유통적이란 말도 좀 그렇다. 건설부. 건설적이란 말은 존재한다. 건설과 '건설적인'은 상당히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이때 '건설적인'은 '생산적인'이란 말과 의미가 통한다. 어떻게 이런 말이 생겨났는지 신기하다. 부동산팀은 아직 새끼를 치지 못했다. 증권부. '증권적'이란 말은 없다. 문화부. '문화적인', 굉장히 호감이 높아지는 말이다. 문화적인 생활, 문화적인 사람, 칭찬이다. '문화적'이란 말이 칭찬이 되는 현상에는, 문화 빈곤 사회의 그림자가 보인다. 문화를 누리는 일은 특별한 일이며, 특별한 사람들의 일이라는 생각이 저런 말을 만들었으리라.

국제부. '국제적', 이건 몹시 대접받고 있는 말이며 갈수록 각광받을 것 같은 말이다. 지방부, 혹은 전국부. 지방적이란 말은 없지만 전국적이란 말은 있다. 어떤 현상을 과장하고 싶을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전국적이란 말에는 중앙정부의 관점이 존재한다. 열외 없는 전체주의가 서성거리기도 한다. 요즘은 메트로팀이나 내셔널팀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파생어까진 엄두를 못 낸다. 체육부. 스포츠부. 있음 직한데 왜 '체육적'이란 말은 없을까. '교육적'이란 말은 있는데 말이다. 골프팀. 골프적이란 말이 나오려면 전 국민이 샷을 좀 더 휘둘러야 할 것이다. 교정부 혹은 교열부. 교정적이란 말도 없고 교열적이란 말도 없다. 편집부. 편집적이란 말은 없다. 다만 편집광적이란 말은 있는데, 가끔 편집기자들이 자신들이 미쳐있는 일에 대해 허무감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한자는 다르다.
요컨대, 적(的)이 붙는 부서는 잘 없어지지 않는 부서로 보면 틀림없다. 적(的)은 그런 중요성을 암시하는 것 같다. 적(的) 앞에 있는 명사들은 대개 하나의 전형성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정치를 하는 인간의 전형성, 외교를 하는 인간의 전형성, 문화를 즐기는 인간의 전형성, 사회활동을 하는 인간의 전형성, 경제행위를 하는 인간의 전형성, 국제적인 일을 하는 인간의 전형성. 그런 것들이다. 그 전형성이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에 각인되었다는 얘기다. 오래 쓰인 말이라도 전형성을 얻지 못했거나, 새롭게 쓰여서 아직 이미지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엔 '적(的)'을 만나지 못했다. 편집국도 '的자 생존'인 셈이다. 그런데 편집부가 살아남으려면 '편집광'부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닐까. ㅎㅎ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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