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합방과 독립, 대한민국 건국, 6.25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에서 그의 삶의 발자취는 많은 평가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한일합방이 되자 귀국해 YMCA를 중심으로 반일 활동하다 체포되었으나 미국 선교사의 주선으로 석방되기도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박용만의 초청으로 하와이로 가 현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지만 외교적 노력으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무장 투쟁 노선을 추진했던 박용만 등과 갈등을 빚습니다. 그의 그같은 독립운동 노선은 1921년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으로부터 불신임 결의를 받기도 하죠.
6.25 중인 1952년에는 계엄령까지 선포하고 반대파 국회의원을 감금까지 하면서 대통령에 재선되고, 1954년에는 종신대통령제 개헌안을 발의, 국회에서 1표가 부족해 부결되었으나 유명한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변칙 논리로 번복, 통과시킴으로써 3선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결국 1960년 3.15선거에서는 전국적이고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해 4선에 당선했으나 4.19로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해 있다가 현지에서 사망합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오랜 옥살이를 하는 등 국가를 위해 온몸을 바쳤으나 그의 인생 후반부는 많은 오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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