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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아경 8경(八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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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산의 안견 박물관에서 본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두 가지 생각을 들게 했다. 우리의 오랜 '8경'의 전통, 그리고 8경은 단지 경관이 아닌 정경이며 정취라는 것이었다. 퇴계 선생이 꼽은 단양8경이나 서울의 남산8경은 자연에 대한 심안(心眼)을 보여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비단 자연뿐 아니라 세상의 어디에든 8경이 있을 것이다. 결국 8경(또는 5경이든 9경이든)을 꼽아보는 건 주변의 사물과 자연, 자기가 터 잡고 있는 곳을 깊게 바라보고 깊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컨대 독자들이 받아보는 이 신문을 만드는 '아경(아시아경제)의 8경'을 꼽는다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그 제1경은 자신을 깨우면서 또 세상을 깨우는 편집국의 새벽이다. 힘겨운 기상이지만 새벽의 순정한 기운이 보상처럼 주어진다. 제2경은 미명, 여명의 시간에 만나는 도시의 풍경들,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함이다.
오전 10시를 넘어선 시간, 편집국에는 삼엄한 긴박감이 감돈다. 온갖 날것과 재료들에 새로운 생명과 형상을 부여하려는 연금술이 펼쳐지며, 기자들은 주어진 원고량, 10자 안팎의 제목에 스스로를 감금하는 수인(囚人)이 된다. 과격한 언사로 부원들을 다그치는 어느 부장은 냉혹한 간수이자 이 연금술의 좋은 연료다.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같은 이 순간이 제3경이며, 아마 가장 절경일 것이다.

이윽고 긴장은 정점에 달하며 어느 순간 일시에 분출하더니 일순 화창한 날씨로 바뀐다. 이 극적인 대반전이 제4경이다. 오후 6시, 오늘의 마지막이자 내일의 시작, 아침을 누구보다 일찍 맞듯 다음 날을 앞당겨 맞는 것이니, 이것이 제5경이다. 그리고 밤새 꺼지지 않는 편집국의 불빛, 충무로의 한 귀퉁이에서 세계를 지켜보는 오관이 되는 셈인데, 그것이 제6경이다. 50대 국장에게 20대 수습기자가 '님'자를 붙이지 않고 부르는 곳, 그렇게 수평적 관계로 만나(려하)는 관계, 그것이 제7경이다.

어제의 신문처럼 처량한 게 또 있을까. 찰나처럼 만개했다가 후두둑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신문이란 매일 소멸하는 운명이다. 그러나 그 짧은 생이 하나의 역사로, 결국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 그 비경(秘景)이 마지막 제8경이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 만약 직업에도 '직격'이 있다면, 그건 직업이 무어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자신의 일의 8경을 생각하는 것, 그건 그 일의 본질에 다가서는 것이며, 그 일을 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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