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1180원까지 갔던 달러당 환율이 최근 1080원대까지 속락했음에도 나라가 망할 듯 호들갑떨며 환율방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예전 만큼 많이 들리지 않는다. 환율을 높여봐야 수출을 많이 하는 대기업의 배만 불릴 뿐 그 과실이 중소기업과 가계로는 잘 흘러내리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학습효과는 경제를 바라보는 국민의 관점과 환율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를 한 단계 격상시켰다.
노무현 정부 후기에 최저 910원대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이명박 정부 전기에 급등해 최고 1570원대까지 무려 73%나 올랐다. 그 덕에 삼성전자의 순이익 실적이 그 전의 2배 이상으로 급증하는 등 수출 대기업들은 일제히 쾌재를 불렀고, 환투기 세력도 신이 났다. 그러나 노동자 실질임금은 오히려 억눌려 그 상승률이 2008년에는 고작 0.2%, 2009년에는 아예 -1.1%를 기록했다. 수출 대기업의 이익이 노동자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고환율에 뒤이은 물가상승은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돌아갔다. 많은 중소기업 사장들을 울린 외환파생상품 '키코'의 대규모 손실 사태도 인위적 고환율 정책과 무관치 않았다.
무조건 고환율은 나쁘고 저환율은 좋다는 게 아니다. 환율은 이미 자유화돼 외환당국이 함부로 조작할 수도 없다. 그러나 모든 가격변수가 그렇듯 외환의 가격인 환율도 높거나 낮음에 따라 부문별로 엇갈리는 득실을 초래한다. 수출부문과 내수부문, 대기업과 중소기업, 외국기업과 국내기업, 자산가와 근로소득자가 각각 상반된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환율이다. 정치인이든 관료든 경제전문가든 누가 환율에 대해 하는 말을 들으면 그가 어느 쪽 편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미국ㆍ유럽ㆍ중국ㆍ일본이 모두 돈 풀기에 여념이 없어 원화 강세 기조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내수 위주인 중소기업 저변을 확충해 수출 대기업에 편중된 우리 경제구조의 시스템 리스크를 낮추는 데도 다소 낮은 환율이 도움이 된다. 그러니 외환당국이 신경을 쓴다면 환율이 추세적 변동범위의 상단보다 하단에 안정적으로 위치하도록 유도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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