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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광규의 '그의 말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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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누가 부는지 뒷산에서/서투른 나팔 소리 들려온다/견딜 수 없는 피로 때문에/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그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여름내 햇볕 즐기며/윤나는 잎사귀 반짝이던 감나무에/지금은 까치밥 몇 개/높다랗게 매달려 있고
땅에는 떨어진 열매들/아무도 줍지 않았다/나는 어디쯤 떨어질 것인가(......)

■ 시인은, 죽기 2년전에 미완성 장편소설 '성'을 썼던 카프카에게서 저 시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41세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체코의 이 작가는, 토지측량사 K가 행정청의 부름을 받은 뒤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으나 뜻밖에 일이 얽히고 설켜 끝내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답답하고 얄궂은 이야기를 그렸다. K는, 소설 마지막에, 입성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듯 했으나, 갑자기 견딜 수 없는 피로감이 엄습해 때를 놓치고 만다. 김광규 시인은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 대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중년 이후가 되어서야 저 견딜 수 없는 피로와 참을 수 없는 졸음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고 말한다. 인생의 가을에 느끼는, 이 삼엄한 무력감. 모든 생의(生意)를 중도에 접고 싶은 K콤플렉스에 관하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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