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아,저詩]김광규의 '그의 말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중에서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가을날/누가 부는지 뒷산에서/서투른 나팔 소리 들려온다/견딜 수 없는 피로 때문에/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그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여름내 햇볕 즐기며/윤나는 잎사귀 반짝이던 감나무에/지금은 까치밥 몇 개/높다랗게 매달려 있고
땅에는 떨어진 열매들/아무도 줍지 않았다/나는 어디쯤 떨어질 것인가(......)

■ 시인은, 죽기 2년전에 미완성 장편소설 '성'을 썼던 카프카에게서 저 시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41세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체코의 이 작가는, 토지측량사 K가 행정청의 부름을 받은 뒤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으나 뜻밖에 일이 얽히고 설켜 끝내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답답하고 얄궂은 이야기를 그렸다. K는, 소설 마지막에, 입성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듯 했으나, 갑자기 견딜 수 없는 피로감이 엄습해 때를 놓치고 만다. 김광규 시인은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 대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중년 이후가 되어서야 저 견딜 수 없는 피로와 참을 수 없는 졸음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고 말한다. 인생의 가을에 느끼는, 이 삼엄한 무력감. 모든 생의(生意)를 중도에 접고 싶은 K콤플렉스에 관하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엔비디아 테스트' 실패설에 즉각 대응한 삼성전자(종합) 기준금리 11연속 동결…이창용 "인하시점 불확실성 더 커져"(종합2보) 韓, AI 안전연구소 연내 출범…정부·민간·학계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국내이슈

  • 비트코인 이어 이더리움도…美증권위, 현물 ETF 승인 '금리인하 지연' 시사한 FOMC 회의록…"일부는 인상 거론"(종합) "출근길에 수시로 주물럭…모르고 만졌다가 기침서 피 나와" 中 장난감 유해 물질 논란

    #해외이슈

  • [포토] 고개 숙이는 가수 김호중 [아경포토] 이용객 가장 많은 서울 지하철역은? [포토] '단오, 단 하나가 되다'

    #포토PICK

  • 기아 사장"'모두를 위한 전기차' 첫발 떼…전동화 전환, 그대로 간다" KG모빌리티, 전기·LPG 등 택시 모델 3종 출시 "앱으로 원격제어"…2025년 트레일블레이저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美 반대에도…‘글로벌 부유세’ 논의 급물살 [뉴스속 용어]서울 시내에 속속 설치되는 'DTM' [뉴스속 용어]"가짜뉴스 막아라"…'AI 워터마크'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