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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윤배의 '가을산을 보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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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괴로움은 없겠다/기울어야 할 곳에서/기울 줄 아는 말들의 숲/푸른 목질 속으로 길어올리던/말들을 되돌려 보내며, 한여름/숨가쁘게 길어올린 말들이/괴로움이었음을 깨닫는다/욕심껏 껴안았던 햇살 풀어주며/혓바닥까지 붉어진 말들/뿌리 곁으로 되돌아간다/가을 햇살이/내 다공의 몸 속 환하게 밝힌다(......)

■ 김윤배는 가을산을 보면서 말들이 기우는 걸 보았단다. 조락(凋落)을 앞둔 나뭇잎들이 비스듬히 땅 아래로 기우는 걸, 그는 그렇게 말했을까. 혓바닥까지 붉어진 말들/뿌리 곁으로 되돌아간다, 라는 구절이 그런 암시를 준다. 숨가쁘게 길어올린 말들은, 저 무성했던 나뭇잎들의 은유이긴 하지만, 결국 나무와 같이 헐벗을 자리에 선, 나의 내성(內省)이 아닐까 싶다. 단풍을 혓바닥까지 붉어진 말들(잎사귀와 혀의 형용이 비슷하다)이라 표현하니, 나뭇잎이 안고있었던 생, 그 통째의 괴로움의 정체가 드러난다. 하늘로 치솟던 다변(多辯), 그 수다들이 이윽고 기울어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나무는 침묵의 몸이 된다. 그때 드러나는 그의 발을 보라. 정맥이 불거진 나의 발. 시는, 참 맛있다. 말들이 기우는 가을날, 그 말들이 날려 한 아름 침묵같이 내게 닿는 날.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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