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일제시대 간드러진 목소리로 사람들을 위로하던 가수 박향림부터 현재의 싸이 노래까지. 80년 동안의 우리나라 근현대 가요음반자료 5만장을 소장한 이가 있어 화제다. 그가 모아온 음반에는 1920년대 가요부터 시작해 1960년대 한국 록 음악의 대부 신중현, 전설적 트로트 가수 이미자, 하춘화, 김추자와 한국 팝의 거장 조용필,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서태지 등 셀 수 없는 가수들의 노래가 담겨있다.
그는 만나자마자 1920년대 축음기를 틀어 박향림씨의 '오빠는 풍각쟁이'를 틀어줬다. 증폭돼 흘러나오는 박향림의 음색은 발랄하고 코믹스러웠다. 억압의 시대이자 어두운 식민지 시절 밝은 기분을 들게 하는 노래였다. 가요는 이처럼 당시 시대상과 사람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었다. 슬픔과 기쁨을 노래에 곡진히 담아 위로하고 고통을 나누는 매체였다.
민 씨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고향 동네 극장에서 틀어줬던 우리 가요가 늘 기억에 생생했었는데, 서울 지사로 직장을 옮긴 후 갑자기 그 노래가 듣고 싶어 청계천을 찾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가요음반을 모으게 된 것"이라고 수십년 동안 음반자료를 수집해 온 이유를 설명했다.
어린시절의 추억이 상경해 서울생활을 시작하면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찾은 곳이 청계천 레코드가게들이다. 그가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 때는 1979년이다. 당시 LP판 한장에 200원 정도였다. 민 씨는 그곳에서 '불나비', '맨발의 청춘' 같은 음반이 수두룩해 너무 기뻤다고 한다. 주말마다 청계천에서 음반을 사서 모은 민 씨는 드디어 1980년 봄 처음으로 전축을 사게 된다. 그는 "눈물이 나더라. 그 음반들을 틀어보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만 있을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해 5년 동안 모은 음반만 800점 정도가 됐다. 1992년에는 우연히 1920년대 축음기판 음반 500장을 발견했는데, 너무 욕심이 나 그것도 은행대출까지 받아 살 정도였다. 당시 돈 500만원이었는데, 이는 웬만한 아파트 전셋값 수준이었다.
1995년 민 씨는 18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수집활동에 나선다. 당시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가지고 고향에 임대업을 소일거리로 하며 시작된 일이다. 이제부터는 활동범위가 전국으로 확대됐다. 골동품과 희귀자료들이 모여지는 장소들을 수색해 순천, 전주, 김제, 안동 등지를 트럭 몰고 숱하게 찾아다녔다. 순천과 목포를 오가는 일들이 많아져 중간거점인 강진에는 창고 하나를 빌려 보관했다. 이 창고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만들어진 농촌지역 부락 공동창고였는데, 그가 그곳을 발견할 당시에는 이미 사용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농촌경제가 좋아졌고, 농가별로 개인 창고를 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 수집한 음반자료가 1920년대 축음기판 부터 1950년대 10인치 소형 레코드판, 1960년대 우리나라 최초 LP판, 녹음기, 테이프, CD까지 5만여 장이다. 대중가요 책은 1950년대부터 만들어졌는데, 그가 소장한 규모는 1300여권이나 됐다. 전축, 녹음기, 라디오는 600개정도로 음악에 관련된 모든 것이 모아졌다.
민 씨는 6년 전부터 온라인박물관 사이트를 개설해 음반자료 목록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가 현재 꾸는 꿈은 대중가요음반자료관을 세우는 일이다. 민 씨는 "최근 교과서에도 가요가 실리기 시작할 정도로 대중음악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면서 "이를 가요사적으로 연구하는 데 활용하게 하고 시민들에게도 개방해 함께 공유하는 자료로 쓰이길 희망한다"고 기대했다. 그는 이어 "간절히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돈 많은 부자보다 행복하다"며 "소망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그 꿈을 실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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