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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운초 김부용의 '봄밤(春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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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필통에 붓을 꽂으니(揷筆葡萄匣)/방 안쪽의 병풍에 촛불 그림자가 눕네(深屛燭影低)/커튼 끝이 자꾸만 일렁거리더니(下簾波不定)/달이 돋네, 살구나무 서쪽에서(月上杏花西)

운초 김부용의 '봄밤(春宵)'
■ 포도필통에 붓을 꽂는 것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다가 그친 것이다. 아마도 밤 이슥하도록 시를 썼을 것이다. 붓을 꽂고 보니 촛불에 그 붓자루가 비쳐 저쪽에 있는 병풍에 쓰러져 누워있다. 조선 기생 운초는 붓을 꽂으며 눈을 들어 병풍을 본 것이다. 촛불이 주위를 아슴아슴 비추는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주렴(발)이 쳐진 아래쪽이 일렁일렁한다. 촛불이 그 끝을 비춰 그런가 싶어서 가만히 보고 있는데, 문득 뜻밖의 상황이 일어난다. 촛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밖에서 빛이 돋아나서 그런 어른거림이 일어난 것이다. 달이 돋았다. 이 어여쁜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 여인은 우리를 포도필통에서 병풍으로, 그리고 커튼 끝으로 시선을 옮기게 한 뒤, 살구나무 한 그루로 살짝 가리며 보물같은 달을 내놓은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그저 무심한 자연 현상의 일부가, 운초에게는 어떤 드라마보다도 인상적이고 경이로우며 삶의 미감을 돋우는 것으로 되살아났다. 이런 여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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