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이맘때면 세계 500대 슈퍼컴 순위가 발표되곤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소재한 컴퓨터가 세계 20위라고 하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순위는 슈퍼컴 완제품을 제작해내는 능력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이라도 사서 자신의 소유로 했으면 매입 기관의 슈퍼컴으로 간주한다. 결국 국가별 슈퍼컴 구매능력을 보여주는 순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순수 제작능력은 미국이 독점적으로 갖고 있다. 일본이 미국 다음이고 그 다음은 놀랍게도 중국이다. 중국은 아직은 미국 실력의 10%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중국이 자체 제작한 계산장치 칩이 들어간 슈퍼컴이라는 점만 갖고도 세계 3위의 실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중국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향후 인류 발전의 하부구조는 슈퍼컴이 좌우할 것이 분명하다. 환경, 국방, 식량, 식수, 기상, 장수 해법들과 같은 거대 데이터급 문제를 풀어낼 방도는 슈퍼컴을 활용하는 길 밖에는 없다. 힉스 입자 존재 유무 판단도 슈퍼컴이 아니고서는 전혀 할 길이 없다. 슈퍼컴 세계에서도 여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존재하는 80-20 규칙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드웨어는 20퍼센트뿐이고 나머지 80퍼센트는 소프트웨어라는 점이 IT계 불변의 진실이다.
문제는 소프트 파워다. "바보야, 문제는 소프트웨어야"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거든 핵심소프트웨어만은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늘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삼성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애플 측의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으로 인해 미국에서 곤경에 처한 경우가 발생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이번 특허 판결 사태의 본질이 결국 구글 OS와 애플 OS 간의 대결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곤란하다. OS를 놓고 구글과 애플이 한판 승부를 벌이는데 삼성이 구글의 대리전을 펼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업을 넘어서서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중차대한 문제다.
문송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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