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조원에 달하던 펀드수탁고도 300조원 전후에서 정체된 상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펀드의 투자수요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350조원 규모로, 그리고 퇴직연금은 50조원 규모로 크게 성장했다. 그런데 국내 투자수요에만 의존하고 있던 우리 펀드시장에도 해외 투자수요를 확대할 수 있는 변화의 싹이 움트고 있다. 바로 펀드 패스포트(fund passport) 때문이다.
펀드패스포트는 1985년 유럽에서 처음 도입돼 현재는 유럽펀드시장의 약 80% 정도가 유럽의 펀드패스포트인 UCITs(Undertakings for Collective Investments in Transferable Securities) 지침에 따라 등록돼 판매되는 등 2000년 이후 유럽펀드산업이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아시아의 경우 호주가 2010년 9월 역내 펀드산업 활성화를 위해 최초로 이슈화한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현재 국가간 이해관계 때문에 다소 진행이 더뎌지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도 이에 관심을 가지고 펀드패스포트제도와 인프라 정비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산업측면, 업계측면, 투자자측면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제도도입의 효과를 분석해 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자산운용산업의 핵심인프라인 펀드넷(FundNet)을 운영하는 한국예탁결제원의 사장으로서 인프라 측면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국내시장에서 표준화 달성은 펀드의 국내거래는 물론 국경간 거래를 지원하는 데도 큰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인 유로클리어(Euroclear)는 역외펀드의 국내판매 활성화를 위해 펀드넷과 연계된 플랫폼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클리어스트림(Clearstream) 등도 연계를 희망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국내 모든 펀드시장 참가자와 연결해 단일의 표준화를 달성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이는 펀드 패스포트 도입과 관련한 인프라측면에서 큰 경쟁력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역내 펀드패스포트의 도입은 당장 눈앞의 현실은 아니다. 하지만 향후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펀드산업의 허브로 도약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이슈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지금부터 관계당국, 업계, 학계 및 연구기관에서 충분한 논의가 진행돼 바람직한 발전전략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순수 토종펀드인 아리랑펀드가 아시아 전역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날을 기다려본다.
김경동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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