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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들, 싱글몰트 위스키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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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이지 않은 순수의 맛… 高價에도 마니아층 형성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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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의 한 장면. 미국 민주당 출신 텍사스 하원의원인 찰리 윌슨에게 CIA 하위직 요원 거스트 애브라코토스가 찾아와 ‘탈리스커’라는 술 한 병을 건넨다. 그리고 ‘술 중의 왕’으로 꼽히는 대단히 훌륭한 싱글몰트 위스키라고 설명한다. 고위층과 만나지 못해 내심 못마땅했던 찰리는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라며 반색한다.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고 여길 만큼 싱글몰트 위스키는 특색있는 향과 맛으로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명주다.

한국에 싱글몰트 위스키가 상륙한 것은 대략 2000년 초반. 고급 술을 동경하는 위스키 애호가들의 한순간 거품인가 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인기는 여전하다. 아니 4~5년 전부터는 열풍 수준이다. 전용 몰트 바만 해도 전국에 30개가 넘는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30만~500만원으로 고가인 데다 구하기도 어렵다.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20~30%쯤 비싸다. 그러나 한국 위스키 마니아들은 오늘도 싱글몰트 위스키를 찾는다.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싱글몰트 위스키 시음회가 열리고 있었다. 싱글몰트 위스키 전문 수입사인 싱글몰트코리아가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아란’ ‘브릭라디’ ‘벤리악’ ‘글렌드로낙’ ‘스프링뱅크’ ‘글렌파클라스’ 등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싱글몰트 위스키 6개 브랜드의 신제품 60여종을 선보이는 자리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이들은 30~40대 싱글몰트 위스키 마니아들이 많았다. 30대 후반의 광고 크레이티브 디렉터 최대일씨는 “가장 애착이 가는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스프링뱅크와 ‘라가불린’이다. 특히 원초적이면서 아일레이섬 몰트 위스키 특유의 스모키한 풍미가 일품인 라가불린을 손꼽는다”며 “싱글몰트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 같은 독주가, 식도락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옆에서 싱글몰트 위스키를 테이스팅하던 30대 회사원 배대원씨도 거들었다. “3년 전쯤 싱글몰트 위스키를 우연히 접했는데 맛과 향이 남다르더라고요. 호기심이 커져 외국 서적까지 구해 공부했어요. 잠자리에 들기 전, 한 잔 마시면 하루의 피로를 해소하는 데 그만이에요. 이젠 이놈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잔으로도 즐기지만 가끔은 소수 정예 친구들과 몰트위스키 전문 바에서 1병을 구입해 나눠 마시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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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이 넘어 보이는 임병철씨는 한술 더 떴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1년 전, 아예 몰트바를 직접 차렸다. “마시고 즐기는 것만으로 성에 안 차더라고요. 즐기는 것도 ‘제대로’ ‘끝까지’ 하자는 거죠.” 행사장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기호가 뚜렷하고 전문적인 지식도 풍부했다.

불황에도 아랑곳않고 싱글몰트 위스키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위스키 전체 판매량은 256만6020상자(1상자=700㎖ 12병)로 전년 대비 4.9% 줄었다. 1.3% 하락했던 2010년(269만7118상자)에 비해 감소 폭이 무려 4배 가까이 커졌다.

고소득 전문직 열광에 5년새 시장 2배로 늘어
반면 지난해 싱글몰트 위스키 소비량은 6만862상자로 전년 대비 약 9% 증가했다. 대표 브랜드로는 각각 45%, 42%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글렌피딕’(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과 ‘맥캘란’(에드링턴코리아)을 비롯해 ‘글렌리벳’(페르노리카코리아), ‘싱글톤’(디아지오코리아) 등이 있다.

싱글몰트의 매력에 푹 빠진 위스키 애호가들도 늘고 있다. 세계적인 위스키 테이스팅 행사로 지난해 2월 국내 첫 개최된 ‘위스키 라이브’에서는 싱글몰트 위스키 부스에만 긴 줄이 이어지는가 하면 ‘맥켈란 아로마 테이스팅 클래스’에 100여명 넘게 몰리는 등 성황을 이뤘다. 최씨는 “아무래도 고가의 술이다 보니 CEO, 변호사, 의사, 디자이너 등과 같은 고소득 전문직의 팬층이 두텁다”고 소개했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가격은 수십만원부터 수천만원까지 다양하다. 2008년 이전에는 한 두 곳에 불과했던 싱글몰트 위스키 전문 바가 요즘엔 미스터사이몬바, 팩토리, 라이온스덴, 클래식바 빈, 잭슨바 등 강남 및 홍대 일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1만6000원대부터 한 잔씩 파는 ‘잔술’이 젊은층과 초보자, 여성 고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병으로 사기엔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모여 편하게 즐길 수 있어서다. 플라자호텔의 더라운지, 파크하얏트호텔의 팀버하우스, 신라호텔의 라이브러리 등 여러 호텔 바에서도 싱글몰트 위스키 메뉴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바를 벗어나 고급 한식당과 레스토랑, 퓨전 주점 등에서 싱글몰트를 별도 메뉴로 분리해 병 혹은 잔 단위로 판매하는 곳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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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일부 와인샵에만 부분적으로 공급돼 왔으나 이제는 소비자들이 쉽게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경로도 마련됐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100여종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갖춘 ‘더 몰트샵’이 오픈하는 등 전문 몰트샵이 생겨났고 이마트를 비롯한 대형할인 매장에도 싱글몰트 위스키 전문 코너가 만들어졌다. 박재용(52·회사원)씨는 “제품이 비싸기 때문에 할인매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격대가 5만~20만원 정도로 고급 호텔 판매가격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싱글몰트코리아 유용석 대표는 “싱글몰트 위스키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새로운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요구도 갈수록 높다”며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하고 특색 있는 제품, 한정판 빈티지 제품들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애호가들이 꼽는 인기 요인은 ‘골라 마시는 재미’
위스키 애호가들이 앞서 열거한 매력을 이해하려면 기자도 싱글몰트 위스키를 ‘제대로’ 체험할 필요가 있었다. 다채로운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를 보유한 것은 물론 고연산을 잔으로도 즐길 수 있는 몰트위스키바를 선택, 저녁 6시 무렵 서울 태평로 플라자호텔의 더라운지를 찾았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의 강윤수 브랜드 앰배서더의 도움을 받아 테이스팅을 진행했다. 시음 대상은 글렌피딕 12년과 15년에 이어 18년까지 세 종류의 싱글몰트 위스키였다.

도수는 모두 40도로 같았다. 가격표를 살펴보니 한 잔(30ml)에 각 1만5000원, 1만7000원, 2만1000원이었다. 1병을 사서 마시려면 32만원, 36만원, 44만원으로 가격이 껑충 뛴다. 싱글몰트 위스키 테이스팅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강씨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튤립 모양의 전용 잔에 마시는 게 좋다”고 일러줬다. 위스키가 머금고 있는 다양한 향을 모아줘 풍미를 잘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란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처음 접할 때는 너무 강하게 와닿을 수 있으므로 코 주변에 스치듯 잔을 앞뒤로 움직이면 거부감 없이 은은하게 향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강씨의 말대로 글렌피딕 12년부터 차례대로 향을 맡고 한 모금을 마셨다. 입안에서 혀끝으로 둥글리듯 음미했다. 처음에는 세 종류의 향과 맛이 뚜렷이 구별되지 않았다. 몇 번 반복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글렌피딕 12년은 쌉싸래한 첫 맛에 이어 과일향으로 마무리됐다. 강씨는 “드라이함이 강조돼 남성에게 추천할 만하며 화이트 와인처럼 샐러드와 생선류 요리와 잘 어울린다”고 했다. 15년은 달콤한 꿀맛이 입안에 퍼졌다. 초콜릿과 견과류를 곁들이면 좋단다.

특히 여성들이 좋아한다고. 강씨는 개인적으로 달달한 글렌피딕 15년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18년은 아오리사과의 새콤달콤한 향에 묽직하지만 좀 더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여기서 ‘묵직하다’는 건, 와인을 표현할 때 ‘보디감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레드 와인과 비슷해 육류 요리와 매치할 것을 권했다.

더라운지 바텐더 배병준씨는 “싱글몰트 위스키가 뜨는 가장 큰 이유는 알아가는 재미, 골라 마시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맛과 향의 개성이 강하고 증류소, 원료 등으로 차별화·고급화할 수 있어 취향에 맞춰 마실 수 있다는 것. 이어 그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주 소비층은 30~40대로 비교적 해외 유학을 많이 한 세대”라며 “외국에서 경험했던 맛을 귀국해서 찾으려는 경향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달라진 음주 문화도 한 요인으로 꼽았다. ‘견디셔’를 들이켜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1, 2, 3차로 이어지는 ‘먹고 죽자’ 식의 음주는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싱글몰트 위스키가 와인처럼 향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한 잔씩 마시는 술로 인식되면서 강남의 몰트바에는 외국인 바이어들과의 비즈니스 목적으로 오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한다.

에드링턴코리아 관계자는 “싱글몰트 위스키가 한식과 궁합이 어울린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육포, 굴, 동태전과 같은 담백한 안주를 곁들여 가볍게 마시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며 ”향후 어느 특정 장소에서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가볍게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이 정착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업계는 싱글몰트가 전체 위스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밖에 안 되지만 대중화될 경우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단, 높은 가격과 센 술에 대한 거부감 등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100% 보리맥아 사용… 위스키의 귀족

몰트(Malt)는 보리에 싹을 틔워 만든 맥아를 의미한다. 초기 위스키는 모두 몰트 위스키였다. 하지만 보리 맥아를 사용하는 몰트 위스키는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다. 결국 밀·옥수수 등 곡류를 사용한 그레인 위스키를 개발하게 됐다. 블렌디드(Blended Whisky)는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 만든 위스키다. 싱글몰트 위스키란, 단일 증류소에서 만든 몰트 위스키를 말한다.

오랜 숙성 기간을 통해 특유의 맛과 향이 강하며 생산되는 증류소, 지역, 사용되는 물과 오크통, 풍토, 만드는 사람 등에 따라 그 성격이 구분된다. 이에 반해 블렌디드 위스키는 향과 맛이 상대적으로 덜하며 수십 종의 위스키 원액과 수십 곳의 위스키 원액을 섞어 제조하므로 개성이 덜하고 가격이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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