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오후 1시쯤 전화가 걸려온다. 모 은행 '나○○ 대리'라고 신분을 밝힌 이 여성은(은행 여직원이라니까 심리적으로 경계를 안 한다.) "지금 당신의 통장과 주민등록증을 가진 남자분이 대신 돈을 찾으러 오셨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해서 전화를 드립니다. 혹시 이 주민번호가 맞습니까?" 하고 묻는다. 듣고 보니 바로 자신의 주민번호다. 그 은행과 거래 안 한다고 하면 "가짜 주민등록증으로 대포통장을 만드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니 일단 가까운 경찰서에 연락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직후에 '박 모 형사'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다. "조회를 해 보니 최근 지방 모 은행에서 60여개의 대포통장으로 불법자금 거래를 하다 잡힌 일당이 있는데, 그 60여개 대포통장 속에 귀하의 통장이 또 있다. 이 사건은 내 담당이 아니고 다른 경찰서 김 모 형사과장 소관이다. 이 분이 전화를 할 테니 통화해 봐라." 그 전화를 끊자마자 김 모 형사과장이라는 다른 사람에게서 또 전화가 온다.
이 과정에서 검거된 범인들과 돈을 주고받은 흔적이 있는지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내 은행계좌를 '동결'(절대 계좌이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행 문이 닫히기 전 은행으로 가도록 유도한다(이 시점이 3시30분 정도, 은행 문이 닫히기 직전이다). 검찰이 계좌를 추적할 수는 있지만 '동결'하지는 않는다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 시간에 쫓겨 속을 수도 있는 교묘한 상황 조작과 심리적 압박, 여러 인물이 숨 쉴 틈 없이 등장하는 것이다.
가장 황당한 사실은 이들이 개인의 전화와 주소, 주민번호, 경력, 이력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 정보가 이처럼 범죄집단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는가. 그렇게 노출된 정보가 온갖 형태의 보이스 피싱이나 금융사기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시니어비즈니스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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