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객관성, 보편성, 합리성을 근거로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보더라도 과학적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교한 경험적 관찰과 논리 체계가 과학의 그런 특성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과 달리 과학이 누구에게나 막강한 설득력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입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주장은 결코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논란이 되는 이슈에서 과학적 증거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위험하다. 과학이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사회 문제를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는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현대사회의 이슈는 대부분 지극히 복합적인 양상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과학적 증거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과학자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 제시되는 과학적 증거에도 물론 문제가 있다. 과학자가 과학적 언어를 사용해서 제시하는 주장이라고 모두 과학적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상대방의 '과학적' 주장에 흠집을 내기 위해 나선 정치적 과학자의 일방적이고 감정적이고 단편적인 주장은 상대를 현혹시키기 위한 유사(類似) 과학적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높은 수준의 전문적 표현을 동원한 주장이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과학계도 막중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소신과 과학적 주장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 줘야 한다. 물론 과학자의 정치활동이나 사회 활동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과학기술시대의 과학자들에게는 그 같은 역동적 활동이 더욱 요구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과학자의 정치ㆍ사회 활동이 과학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과학은 인류 공동의 가장 소중한 지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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