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한 건 소극장에선 대부분 이걸 생략하는데 거기서 신종플루에 감염됐다는 뉴스는 전 세계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건 바이러스조차도 알고 비켜간다는 거죠. 그 시장이 원래 열악하다는 현실을 말입니다.
‘지방균형발전’이란 해묵은 숙제는 뱃살과 허벅지의 지방을 조절하고 허리라인을 살려내자는 개인적인 차원의 구호가 아닙니다. 서울과 지방의 문화시장 수요자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건 경제력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지요. 그 규모가 대충 10대 1로 보면 거의 맞습니다. 영화도 출판도 연극관객도 말입니다.
-공존의 이유- 조병화 시인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위의 시 마지막 둘째 줄.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을 ‘친구가 서로 짐이 되면’으로 바꾸면 뮤지컬 ‘소울메이트’가 전하는 메시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친구는 다시 떠나고, 짧은 성공과 돈도 사라지고, 예전처럼 혼자 남은 자신을 긴 거울 앞에 세워놓고 그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면서 왠지 낯선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영혼의 동반자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 비좁은 공간을 차지하던 친구의 짐이 나간 후 한층 왜소해져버린 자아(自我).
우리가 살면서 자기 이름을 제 입으로 소리 내어 불러 본 기억이 몇 번이나 있을까요? 실제로 작은 소리로 불러 본 즉 참 어색하더군요. ‘자기 안의 또 다른 나’를 향해, “이은성~”, “은성아~” 마지막 장에서 여주인공이 거울 앞에서 애타듯 찾는 자신의 영혼은 끝내 대답도 없고 여운이 남는 신(scene)이었습니다.
딱 한 가지 그 대목에서 에코마이크를 사용했더라면···. 뭔가 허전하게 자리를 일어서게 만드는 그 뮤지컬의 마력(?)에 아쉬운 마음이 들더군요. 마지막 3분의 긴장감은 축구경기나 연극무대나 마찬가지 무게란 사실.
그래서 그 좋은 몸짓과 가창력으로 금요일엔 ‘여행을 떠나요’, 토요일 저녁공연엔 ‘달빛창가에서’나 ‘토요일은 밤이 좋아’, 아님 눈 내리는 날엔 ‘그 겨울의 찻집’같은 피날레 송으로 막이 내리면 여운이 한결 더 할 텐데··· 나름 생각해 봅니다.
캠퍼스커플과 클래스메이트, 룸메이트와 베게친구, 그리고 소울메이트, 이 중에서 생각나는 짝과 이번주 대학로를 걸어보시죠. 가을바람이 싸늘하다싶으면 오후에 ‘열린극장’의 열기에 몸을 맡겨보세요. 사랑을 메뉴처럼 잘 골라야 하는 시대에 4명의 남녀가 보여주는 90분간의 열정에 물들어 보면 어떨까요.
‘있을 때 잘해!’란 다섯 글자가 비단 사랑에만 적용이 되진 않는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할 소박한 뮤지컬입니다. 살아 있을 때, 친구가 있을 때, 열정이 있을 때, 짝이 있을 때, 주머니가 불룩할 때,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 보다 잘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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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가 김대우(pdi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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