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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사진처럼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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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는 벚꽃축제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 서로 어깨도 부딪히고 여의도에 들고 나는 차량들로 정체도 빚어졌지만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가족 단위로 혹은 연인과 함께 벚꽃 길을 거닐며 부지런히 카메라에 표정을 담았습니다. 웃는 모습, 찡그린 모습 등 표정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벚꽃과는 모두 잘 어울렸습니다. 이들은 벚꽃과 함께 담겨 있는 카메라 속의 표정을 보며 어느 날의 여의도를 생각하고 다시 즐거워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래서 사진을 찍고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려 하나 봅니다.

사진이 없었다면 어린 시절의 모습이나 주변 풍경들을 기억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아련히 생각은 나지만 무엇인가 확실히 맺혀지지 않는 영상들이 기억 속의 옛 모습을 간간이 단절시키고 우리들의 삶 속에서 분리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사진은 기록이자 역사입니다. 사진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개인의 역사가 될 수도, 지역의 역사가 될 수도, 한 나라의 역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집엔 아이들의 성장과정이 담긴 10여권이 넘는 앨범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갓 태어나 첫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부터 이부자리에서 웃는 모습, 목욕 모습, 안아주는 모습 심지어 우는 모습까지 다양한 표정이 담긴 사진들이 앨범을 메우고 있습니다. 이런 사진은 태어나서 1주일, 2주일, 한 달, 1백일, 반 년, 돌, 두 살 등 거의 1주일 혹은 한 달 주기로 간단한 설명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조금 커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에는 주기가 길어졌지만 입학식, 생일, 기념일 등은 여지없이 앨범에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귀중한 성장사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정성이었는지 모르겠다지만 앨범 속의 모습들은 자신을 찾아주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에게는 사진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몇 장 되지 않는 빛바랜 사진들을 보며 과거 시간으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청운의 꿈을 가졌던 시절로도 돌아가 보고 혈기 왕성했던 때도 회상하며 추억의 창고에서 옛 기억들을 꺼내 봅니다. 점점 세월이 묻어나는 사진들을 보며 당시 자신의 모습에서부터 오늘의 내가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렇게 옛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았던 사진이 일부에서는 왜곡되고 변형되기도 합니다. 사진을 통해 자신의 가장 예쁜 모습을 담기 위해 화장을 짙게 하고 조금은 조명과 각도를 조절하는 이른바 ‘얼짱 각도’까지는 정보를 일부 변형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지만 흔히 말하는 포토샵을 통해 사진 자체를 변형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보다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한 애교 있는 손질이야 넘어가겠지만 근본적인 변형은 오류와 착오를 낳습니다.
예전 제가 근무했던 한 신문사에서 사진을 변형한 적이 있습니다. 포토샵 수준을 넘어 사진을 합성한 것입니다. 제주도의 한 말 목장에서 말들이 자유자재로 뛰어노는 모습을 한두 각도에서 합성해 마치 무질서한 모습을 연상케 했습니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왜곡해 당시 정부가 무기력하고 사회가 무질서한 모습을 형상화하였습니다. 무리한 조작을 통해 한 컷의 메시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죄를 저지른 것이지요. 그것도 신문 1면에 말입니다. 당시 그 신문을 본 독자들이 그 사진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지 다시 생각해도 신문 제작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기사 내용에 맞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취재하는 기자가 직접 모델이 되어 찍은 뒤 불특정한 인물인 듯 처리해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습니다. 사진처럼 현장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없는데 기자의 의도에 따라 인위적으로 이미지를 왜곡한 것입니다.

사실 전문가들은 ‘사진이 있는 그대로를 담아낸다’는 생각은 오해라고들 말합니다. 이들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은 3차원의 공간에 있는데 사람의 눈은 그것을 2차원 평면의 공간에 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변환되고 때론 왜곡되기도 한다는 논리지요. 사진 역시 사람의 눈의 효과에 따라 만든 기계에 의해 상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라기보다는 ‘찍는 사람의 생각’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많은 일들이 있는 그대로 발표되지 않는 느낌입니다. ‘찍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갖습니다. 한창 공방 중인 ‘장자연 리스트’ 진실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가 죽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론된 사람마다 이야기가 다릅니다. 또 명예훼손이다 하며 서로 치고받기에만 혈안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둘러싼 뇌물 사건도 진실이 어디까지인지 갈수록 미궁입니다.

사진은 추억이고 기록이며 역사인데 뒤편에 감춰진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가 보는 현실에서 형상화의 단계로 이동하면서 어떤 왜곡이 덧칠됐는지 모두 궁금증 뿐 입니다. 우리가 휴일 여의도에서 꽃과 나무와 나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듯 우리 사회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투영되어 한편의 기록으로 추억의 화첩에 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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