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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덮친 실업 한파...농민공들 눈물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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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저녁(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시내 한복판에 있는 베이징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ㆍ25~27일)를 앞두고 역에서는 벌써부터 대규모 귀향 행렬이 시작됐다. 베이징역은 베이징서역과 더불어 베이징 내 4개역 가운데 가장 붐비는 곳이다.

새해 첫날부터 사흘 동안 52만명이 베이징역에서 귀향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한 수치다. 매표소는 아직 한산했다. 역 밖의 여러 매표소 앞에서 기차표를 구하는 사람은 모두 합해봐야 100명 정도였다.

베이징역의 한 관계자는 "중순쯤이면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100m 넘게 늘어선다"고 설명했다.

대합실로 들어서니 그제서야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4개 대합실은 고향을 향해 떠나는 승객들로 북적댔다.

어디 소풍이라도 가듯 가벼운 배낭만 달랑 맨 젊은 남녀와 때 묻은 여러 보따리를 짊어진 부부들로 가득했다. 젊은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카드를 치는 모습도 보였다.

귀향 행렬은 춘제 보름 전부터 본격화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리 한 달 전부터 대합실이 북새통이다.

사실 인구 1700만명이 넘는 베이징이다보니 미리미리 움직이지 않으면 고향 가는 기차표를 구하기 힘들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올해 고용 사정이 특히 나쁘다는 점이다.

실직한 농민공들이 다른 일을 찾지 못하고 일찌감치 귀향 대열에 대거 참여한 것이다. 농민공이란 시골에서 농사 짓다 겨울 비수기에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오는 일종의 '파트타임 근로자'다. 5일 베이징역에서도 농민공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일감 끊기고 회사 망해 일찍 귀향"=베이징의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일하다 일감이 끊겨 지난해보다 보름 정도 일찍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장천위ㆍ장동위 형제는 20대 중반의 동북 지방 시골 출신이다.

이들 형제는 "회사가 시멘트 살 돈조차 없어 공사를 더 진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형인 장천위씨는 "전만 해도 일감이 끊이질 않아 한 달에 1500위안까지 벌었는데 요즘은 1000위안 벌기도 힘들다"고 푸념했다.

지난달 월급을 모두 받지 못하고 통사정해 일부만 받았다는 동생 장동위씨는 "고향으로 내려가면 1년 뒤 겨울에나 다시 올라올 생각"이라며 "고향에서도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산둥성 출신이라는 한 젊은 여성은 영업 담당으로 일하다 못 견디고 떠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안 좋아 회사에서 제시한 영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그 동안 주변에서 돈까지 빌려 목표를 채웠는데 이제 갚아야 할 돈이 월급보다 많아져 그만두게 됐다"고 들려줬다.

요즘 그의 주변에는 "부모에게 손 벌리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다."

남부 저장성 닝하이가 고향이라는 어느 60대 부부의 사연은 절절했다. 3년 동안 고향 한 번 못 내려가고 일만 했는데 회사가 망하고 사장은 도망가 월급 한 푼 못 받고 귀향하는 길이라고 했다.

부부가 지난 3년 간 못 받은 임금은 모두 6만8000위안(약 1300만원)이다. 노부부는 앞으로 어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번에 고향으로 내려가면 다시 올라올 엄두가 안 날 것이다. 갖고 있는 휴대전화를 팔아 몇 끼 이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마저 떨어지면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부부의 눈시울이 불그스레 젖어들었다.

◆올해 실업률 10% 넘어설 것=올해 중국 정부의 당면 목표는 최소 경제성장률 8% 달성이다. 경제성장률이 이보다 밑돌면 실업률 증가에 따른 민심 불안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새해 들어 취업난이 한층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체감경기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쩍 나빠지고 있다. 제조업 체감지수인 구매자관리지수(PMI)는 5개월 연속 기준치에 못 미쳤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외환보유고는 5년만에 처음 감소했다. 고공 비행을 거듭하던 수출도 11년만에 줄었다. 수요가 위축되고 이어 기업 투자가 줄면 중국 내 실업자 수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중국경제시보(中國經濟時報)는 올해 상반기 예상 실업률이 11%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중국의 도시 실업률이 이미 9.4%에 이른 것으로 집계했다. 사회로 진출하자마자 실업자 대열에 끼게 되는 대졸자도 크게 늘 전망이다. 올해 대졸자 610만명 중 25%는 취업이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중앙정부 산하 두뇌집단인 국가정보센터의 한 관계자는 2008~2009년 일자리 250만개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노동경제학자인 사회과학원 인구노동경제연구소의 카이팡 소장은 "본격적인 실업자 양산이 올해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이 소장에 따르면 일자리를 잃은 이주민들은 주로 공장이나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육체 노동자다. 이들은 글로벌 경기침체의 첫 희생양에 불과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 전역에서 이주민은 1억3000만명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고 귀향한 노동자는 그 가운데 1000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도 안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통계에 나타난 공식 실업률보다 실질 실업률이 훨씬 높으리라는 점이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2007~2008년 중국의 전체 실업률은 겨우 4%다.

시난(西南)증권의 둥셴안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전체 실업률이 8.5%, 4ㆍ4분기의 경우 11%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둥 애널리스트는 올해 하반기나 돼야 실업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동환 베이징특파원 don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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