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주한 미 대사관 직원의 한미 증언록
그는 자신이 주한 미국 대사관 정치과장을 맡았던 1999~2002년을 ‘한국 사회에 반미 감정이 연속적으로 표출되었던 시기’라고 술회한다. 이 3년 동안 AP 통신의 노근리 사건 보도를 시작으로,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이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제초제에 노출됐다며 미국 업체에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됐으며 매향리 사격장 사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의 갈등, 오노 사건으로 일컫는 쇼트트랙 사건, 그리고 미선이 효순이 사건 등이 있었다. 특히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수십만 명이 서울과 각 지역에서 촛불 시위를 벌이며 반미 현상이 절정에 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들 사건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라고 저자가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서술한다.
진술의 객관성 면에서도 이 책은 일정한 ‘보증’을 확보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전직 외교관이 쓴 이 책이 얼마나 유용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했지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외교관이었다’는 평판, 또 부시 정권의 외교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2006년 조기 은퇴한 것에서 자기 직분에 충실하려 한 관료였다는 점 등이 저자의 진술의 객관성에 대한 보증서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가 ‘봉인’을 뜯고 공개하는 많은 ‘사실’들이 그 객관성과 중립성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에 충실하려 한 저자의 진술이 과연 사실 너머 ‘진실’에 얼마나 근접했는지에 대해서는 적잖이 의문이다. 그는 당시의 반미 현상의 상당한 원인이 한국 언론의 반미적인 기사들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 어떤 신문도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고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희생양의 렌즈를 갖고 사물을 보는 한국 언론’이라는 비판은 뿌리깊은 한국 언론의 문제에 대한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예컨대 미군 측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포름알데히드 방류 사건마저도 한국 기업들의 유해물질 방류에 비할 때 인체에 해를 미치지 않을 터무니없이 작은 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미 바람 속에 지나치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와 같은 인식에 동의하긴 쉽지 않다. 부시 전 대통령이 2001년 3월 워싱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This man”이라고 김대중 대통령을 가리킨 것을 국내에서 한국 대통령을 무시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무지한 한국언론의 왜곡보도’라고 질타한 대목 앞에서 한국인들은 자신의 오해에 대한 반성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진술의 객관성이나 진실에의 접근은 “한국전쟁에 해병대로 참전했던 아버지에게서 한국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자랐던 유년의 기억이 선명하다”라든가 한국인 여성과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따위의 한국과의 ‘연분’과 같은 것만으로는 확보되지 않는 것이다.
그 성찰은 저자도 지적했듯이 ‘관심의 비대칭성’, 즉 한국은 미국에 관심이 높지만 미국은 한국에 관심이 낮은 비대칭성에 대한 이해, 그같은 비대칭성이 형성된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부터 비롯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풍경,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풍경, 참으로 기묘하지만 그 기묘함이 한국과 미국이 맺고 있는 관계의 복합적인 현실의 단면이라는 점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듯하다. 그것이 한국을 이해하려 애써 온 '선량한 외교관'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에게 주고 싶은 조언이다.
이명재 편집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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