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스티븐 핑커 등 인류의 진보에 대한 격한 토론…감정변화까지 그대로 담아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물이 절반가량 든 유리잔. 누군가는 '절반이나 찼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절반밖에 차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태도와 철학의 차이다. 캐나다 오리아재단은 이 간격을 좁히는 노력을 공공 정책 연구의 열쇠로 삼는다. 2008년부터 토론토 로이 톰슨 홀에서 연 2회 토론을 연다. 각 분야 최고 권위자나 전문가가 참여하는 '멍크 디베이트.' 힘 있는 지적 대화에서 비롯된 통찰에서 성장 동력을 구한다.
지난해 11월 열린 토론의 주제는 '인류는 진보하는가.' 거창하면서도 대담한 물음에 기라성 같은 토론자들이 격돌했다. 세계적인 인지과학자인 하버드대 스티븐 핑커 교수(62)와 과학 방면의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58)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반면 국내에서도 단단한 팬 층을 보유한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47)과 '아웃라이더'·'티핑 포인트'의 저자 맬컴 글래드웰(53)은 비관적 입장을 나타냈다.
열띤 토론의 승자는 핑커와 리들리. 청중 300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73%의 지지를 받았다. 핑커는 인류의 진보를 낙관하는 구체적인 증거로 열 가지를 꼽는다. 평균수명, 보건, 절대빈곤, 평화, 안전, 자유, 지식, 인권, 성평등, 지능이다. 향상의 증거를 수치로 제시하며 인류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상대편 논객들이 주장하는 철학의 밑바닥에는 놀랄 만큼 취약한, 그리고 어쩌면 아주 편협할지도 모르는 잔혹한 철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해서 살아갈 만한 철학이 못 됩니다." 리들리도 다양한 통계 등을 토대로 거든다. "내가 낙관적인 것은 기질이 그래서가 아니라 증거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진보는 분명이 있었으며, 특히 최빈곤층의 삶은 개선됐습니다."
보통은 인간의 근본적인 불완전성을 상시시키며 과학 지상주의와 통계 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린다. "우리가 영혼이라 부르는 인간정신의 복잡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여기에는 철학과 예술, 그 밖의 다른 인문학의 겸허한 성찰이 요구됩니다." 글래드웰도 인간의 근원적인 결함을 문제 삼는 방어적 비관론을 편다. "과거에 좋아졌기 때문에 미래에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략) 사고의 오류입니다. 인류의 실존적 위협은 늘 그대로였습니다."
(알랭 드 보통 외 3명 지음 / 전병근 옮김 / 모던아카이브 / 1만3500원)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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