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에는 특별한 교양체육수업이 있다. '서사적 체육: 스포츠와 스토리텔링'이라는 긴 과목명을 가진 수업인데 교양체육과 글쓰기 수업을 결합한 일종의 융합과목이다. 일테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산책(Walking)'이나 사회학자 정수복의 '빠리를 생각한다? 도시 걷기의 인문학'과 같은 책을 발췌해 읽고 평생 걷기를 통해 철학과 문학을 했던 프리드리히 니체, 아르튀르 랭보, 마르셀 프루스트, 발터 벤야민에 대한 삶을 되짚어 본다. 곧바로 강의실 밖으로 나가 방랑자(vagabond)처럼 걸을 것인가 순례자(pilgrimage)처럼 걸을 것인가를 결정한 후 삶이 접힌 공간인 학교근처 골목길로 흩어져 실제로 걷고 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다.
지난 주 수업 시간엔 암벽등반을 해 보았다. 실내 암장에서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홀드를 잡고 매달려 보는 체험이다. 처음 배우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높이 올라가기 보다는 단단하게 잘 매달리는 데 집중했다. 한 시간 정도 실습을 마치고 둘러 앉아 학생들은 암벽등반을 통해 만난 깨달음을 풀어 놓는다.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손과 발의 모양이 역삼각형이나 삼각형 모양을 취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또 다른 차원의 가르침을 낳는다. 다음 번 홀드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삼각형의 안정을 깨뜨려야 한다는 점. 그 손, 혹은 그 발을 떼는 순간 안정은 깨지고 위험의 순간이 다가온다. 추락에 대한 위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다음 번 홀드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내려온 학생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그 위험에 맞설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매일 밤 취직을 위해 자소서(자소설이라고 불리는!)를 쓰는 마지막 학기 학생은 암장에 매달려 위로 한 발짝씩 오르는 경험에서 문득 취직이라는 목표를 향해 안간힘을 쓰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다들 위를 향해 오르고 있기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남들처럼 오르고 있는데 과연 저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단다. 나는 어디까지 오를 것인가? 너무 높이 오르면 떨어질 때 치명적일 텐데? 정말 괜찮을까? 난생처음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묻고 답했다.
엊그제 두 번째 대선주자토론회를 보면서 암벽등반을 오르는 다섯 명의 후보를 상상해 보았다. 평소에 단련이 되어있는 후보는 가벼운 몸과 발달된 근육을 사용해 스윽 쓱 자기 힘으로 잘 올라간다. 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거나 준비가 덜 된 후보는 팔 다리의 힘도 부치고 보는 사람도 조마조마하다. 맨 밑바닥부터 오르느라 중간 지점에서 벌써 헐떡이는 이도 있는 반면 출발점 자체가 다른 사람보다 위였던 후보도 있다. 같이 올라가자고 위에 있는 후보에게 손을 내밀기도 하고(대부분 매몰차게 그 손을 뿌리친다!) 먼저 올라간 이의 발목을 채 떨어뜨리려는 비열함도 엿보인다. 자신의 위치가 시선을 결정하듯 앞선 후보가 보는 세상은 그를 따라 잡으려는 후보가 보는 세상과는 다를 것이다.
5월 9일 정상에 다다른 한 후보와 나머지 후보들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의해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의 운명도 갈릴 것이다. 부디 오르는 자의 덕목을 제대로 갖춘 자가 정상에 서시길!
정용철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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