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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여름 글자 필요 없어/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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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나를 닮아 수박을 좋아한다. 수박 때문에 여름을 좋아한다. 여름 글자를 써 달라고 한다. '여름'이라고 써 주자 그림책을 가져와 무성한 푸른 잎을 거느린 나무 그림을 보여 주며 여름 글자 필요 없어. 이게 여름이니까. 여름 생각하면 수박, 여름 생각하면 자두, 여름 생각하면 포도, 여름 생각하면 매미. 아빠, 매미 말고 여름에 태어나는 게 또 뭐가 있어? 모기. 모기? 모기는 물기나 하고 너무 시시해. 아이가 시시해하는 모기 때문에 여름마다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모기약이 아이한테 해로울까 봐 새벽에 잠 설치며 한 마리 한 마리 직접 잡았으니……. 그 시시한 모기 소리가 얼마나 선명하게 들리던지. 모기야, 아기 피 말고 내 피를 빨아먹으렴. 아기가 모기 많이 물리면 속상해하시는 장모님 얼굴이 생각나 두려웠던 여름날들. 그림책보다 더 여름 같은 나무를 볼 날이 달려오고 있다.


■여름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이런 여름날 아기자기한 시 한 편 함께 읽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아빠를 닮아 수박을 좋아하는 어린 아들이 아빠에게 "여름 글자를 써 달라고" 조른다. 아빠는 '여름'이라고 써 준다. 하지만 아들은 "그림책을 가져와 무성한 푸른 잎을 거느린 나무 그림을 보여 주며 여름 글자 필요 없어"라고 말한다. 아들이 생각하기에 진짜 '여름'은 글자가 아니라 '나무'니까. 그런 아들을 보면서 아빠는 어린 아들이 아주 아기였을 때 행여나 아이가 모기에 물릴까 봐 "잠 설치며" 모기를 잡던 일을 떠올린다. 아빠와 아이는 그렇게 다른 듯 실은 서로 마주 보며 함께 여름을 간직한다. 그리고 아이는 장차 자라나 아빠처럼 "여름 같은 나무"가 될 것이고 아빠는 그 아래에서 시원하게 한여름을 걱정 없이 보낼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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