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글로벌'의 의미는 남다르다. 1960년대 이래 압축성장을 뒷받침한 게 상품 수출과 인력의 해외진출이었다. 이는 바다 건너라고는 제주도도 못 가본 사람에게조차 심정적으로나마 '외국'을 꽤나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글로벌'을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 물건을 팔거나 사람이 가는 것'으로 여기곤 했다.
하지만 외부 일변도의 글로벌 문화 또한 균형을 잃어버린 개념이다. 메이지(明治) 유신을 통해 일찌감치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1970~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룩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배치되는 자국 표준과 폐쇄적 유통구조를 고집하면서 세계에서 고립되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시달려야 했고 '잃어버린 시간'은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났다.
글로벌 감각이 외향적이라면 글로벌 스탠더드는 내향적이란 점에서 건강한 미래를 향한 두 날갯짓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이 선진국의 기준에 따라 상품을 만들어 팔거나 해외에서 인정하는 매너를 실천하는 것만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히려 글로벌 스탠더드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이자 우리 내부적으로 갖추어야 할 건강한 사회통념과 규범가치라고 규정한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글로벌 스탠더드는 여전히 미흡하다. 외국의 합리적인 토론문화를 부러워하면서 정작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는 화부터 내는 모습에서 일그러진 글로벌 스탠더드를 본다. 외국인들이 가까운 친지만 불러 조촐하게 치르는 결혼식을 합리적이라고 칭찬하면서도 수천 만원이 드는 예식이 아니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우리의 민낯에서 사이비 글로벌 스탠더드가 드러난다. 남을 배려하는 교통질서를 힘주어 말하면서도 도로 한복판을 막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에서 피상적 글로벌 스탠더드 문화를 읽는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삼라만상이 인터넷으로 초(超)연결되고, 여기서 분출되는 빅데이터가 인공지능(AI)을 만나 최적의 상태로 정교하게 제어되는 새로운 차원이 전개되고 있다. 국가의 문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초세계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국운을 좌우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빠른 속도로 교환되는 자본과 사람, 정보와 기술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정립이 요원하다. 뛰어난 글로벌 감각만큼 우리 자신의 사고ㆍ제도ㆍ관습을 업그레이드하고 품격을 갖출 때 대한민국은 가보고 싶은 나라, 비즈니스하고 싶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오영호 前 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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