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법이 만들어지지만 일단 법이 만들어지고 나면 다시 이 법이 현실을 규정하고 변화시킨다. 따라서 외국인의 법현실에 대한 규율의 중심인 출입국관리법에 그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법률을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요즘 유행어를 빌자면 이것도 법인가 싶게 체계도 없고, 내용도 부실하다.
내용도 부실하다. 출입국관리법 제10조는 비자(외국인이 국내에서 갖는 지위)제도에 관해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달랑 한 줄 적어 놓았는데 시행령을 보면 A4 용지 10장 분량의 복잡한 내용이 나온다. (독일이나 미국에서는 중요한 내용을 모두 법률로 정해놓고 있음은 물론이다. 여의도의 국회가 의무를 방기한 전형적인 예이다.)
불법체류자 단속도 그렇다. 인권침해의 우려가 상당히 높은데도 근거규정을 찾기가 숨은그림찾기만큼이나 어렵다. 독일이나 미국은 물론 정교한 법체계를 갖고 있다. 유창한 외국어가 아니라도 그 나라들 법을 읽는 것이 수월할 지경이다. 사업장에 압수수색 혹은 단순 출입, 그래서 걸러진 불법체류자의 구금에 대해서까지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영장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획일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상황을 보면 여기도 기업 프랜들리라서 규제의 핵심인 고용주에 대한 제재조항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모호한 규정 앞에 선 공무원은 자의적이 되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는 근거규정이 없다 해 뒷짐 짓고 여론의 관심이 쏠리지 않으면 원님 재판하듯이 전횡을 한다.
법률은 국가와 국민 사이에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수단이자 개입수단이다. 개입은 채찍과 당근으로 이뤄져야 한다. 규제는 둔하게 주변까지 부숴버리는 몽둥이가 아니라 낭창낭창하게 정밀타격하는 채찍이 돼야 한다. 당근은 당장 먹으라고 주서 일회성으로 그칠 것이 아니다. 눈앞에 매달고 다 뛰어야 먹을 수 있게 설계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출입국관리법은 과묵하고 일방적이다. 외국인에게 요구할 것을 제대로 요구도 못하는,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초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친 마초의 법에 불과하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전면 개정돼야 한다.
김환학 서울대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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