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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발견]윤두서의 죽음과 진단타려도(2)

최종수정 2015.10.23 11:10 기사입력 2015.10.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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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타려도(위)와 숙종의 題詩.

진단타려도(위)와 숙종의 題詩.

죽음을 맞던 그해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당나라 말의 혼란기를 살아간 진단(872-989)에 꽂혀 있었네. 난세를 살아가며 벼슬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복식호흡과 신선술을 익혀 118세까지 살았다는 기인이네. 진단은 왕조가 바뀔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며 안타까워했는데,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반가운 기색을 하다 마침 타고 있던 나귀 등에서 떨어졌다고 하더군. 북송의 태조가 되는 인격과 리더십을 갖춘 조광윤이 큰 황제의 재목이라고 여겼기에, 떨어지면서도 "이제 천하가 안정되리라"고 외쳤다 하네. 나는 이 그림을 그렸네. 그것이 '진단타려(진단이 나귀에서 떨어지다)' 그림일세. 자화상에서 내 얼굴을 본 이는 알겠지만 진단의 얼굴은 옛 그림에서 본 그것이 아니라 바로 내 얼굴을 그려 넣었지. 나 또한 조광윤 같은 리더십을 갈망한다는 뜻을 넌지시 담고 싶어서였네. 그런 왕을 보고 싶다는 의미도 되니, 그림을 삐딱하게 보자면, 매우 위험한 뜻이 담긴 것이 되네.

놀랍게도 이 그림이 몇 손을 거쳐 왕(숙종)에게 전달되는 사건이 일어났네. 자칫 역모를 암시하는 듯한 맥락으로 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네.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린 뒤(1701), 왕의 마음은 다시 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네. 그 또한 왕비를 둘러싼 정치적 음모와 시비에 지쳐 있었기에, 진단의 충심이 나의 뜻으로 읽혔던 것 같네. 친히 붓을 들어 제시(題詩)를 써주시지 않았는가.

희이선생(희이는 진단의 호), 어인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미끄러졌나
/술 취한 것도 졸았던 것도 아니니 아주 큰 기쁨이 있구려 /협마의 진영(조광윤의 군사)에서 상서로운 징후가 비치더니 참군주가 나셨네 /이제부터 천하에 걱정이 없어지겠구나


나는 왕의 시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 이곳 해남에서 쓸쓸히 살아가며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보고 있었을 왕을 생각하며 묘한 감회를 느꼈다네. 북송의 태조인 조광윤은 돌에 유언을 새겨놓고 오직 후임 황제만 보도록 하였다고 하지. 나중에 금나라 군사가 황궁을 점령했을 때 석각유훈의 내용이 밝혀졌지. 조광윤은 두 가지를 얘기했네. '지난 권력의 안위를 끝까지 돌보아라. 그리고 신하들의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절대로 죽이지 말라.' 이 두 가지 황제율로 송나라를 번성시켰지. 조선의 숙종 또한 그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진대, 마음에 찔리는 점이 있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림을 그린 자를 처벌한다면 조광윤의 황금률(黃金律)을 어기는 것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조선이 유학왕국의 최고모델로 삼은 북송을 일궈낸 그 지혜를 어떻게 문제 삼을 수 있겠는가. 비록 자신에 대한 비판이 담겼을지언정 관대해질 수밖에 없었을 상황이었을 것이네.

왕은 오히려 기꺼이 그림에 찬을 붙여줌으로써 화의(畵意)에 대한 정치적 시비를 차단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네. 그해 겨울 나는 청춘의 기나긴 독배였던 어느 군주와 아름답게 화해하며 나를 데려가려는 역신의 손을 기꺼이 잡을 수 있었네. 그가 비록 조광윤은 아니었지만, 그 또한 신하들의 패권 다툼에 오그라든 조선의 왕권을 펴기 위해 결단과 사려를 발휘했던 지혜로운 군주였음엔 틀림없지 않은가. 그림 또한 진정한 왕권을 갈망한 것이니, 크게 본다면 이 또한 용비어천가가 아니겠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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