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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서재에서]책읽는 檢事

최종수정 2014.08.19 14:26 기사입력 2014.08.1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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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용 논설고문(얼굴)의 '리더의 서재에서'는 CEO와 경제지식인들의 지적보고(知的寶庫)를 탐방해 깊이있는 성찰의 결과들을 함께 음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윤 고문은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국방홍보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으며 저서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검사와 독서. 빈발하는 흉칙한 대형 사건에 부대껴야 하는 업무의 속성상 어딘지 좀 어울려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수사나 소송관련 서적이 아닌 문학과 철학, 역사 등 인문고전 등을 여러 가족들과 함께 읽고 토론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서울고검 곽규홍 검사는 가족독서모임을 만들어 11년째 다음카페에서 만난 의사, 변호사, 교사, 은행원 등 직역을 달리하는 여러 가족들과 함께 매달 한 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토론해오며 지난해에는 이 내용들을 담아 책으로 엮어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둔 곽 검사는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들들이 중학생이던 2003년 3월부터 뜻을 같이하는 이웃의 몇 가족들과 함께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고전을 읽는 '네오클(http://cafe.daum.net/neoclassics)'이라는 모임을 이끌어왔다.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가운데서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독서모임을 지탱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2011년 창원지검 차장검사 시절 사상 초유의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을 파헤친 명검사였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과거 서당 훈장의 자상한 풍모가 돋아나오는 곽 검사를 검찰청사에서 만났다.

곽규홍 서울고검 검사

곽규홍 서울고검 검사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는가?
▲그렇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너무 편중된 독서를 한 것 같아 아쉽다. 적절한 독서지도를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느 정도 성숙한 이후부터 독서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름의 독서법이 있다면?
▲'나를 일깨우는' 새로운 생각들을 찾아가면서 책을 본다. 이미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당연히 더 많은 생각의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이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해 주는 면도 있지만 책은 '생각의 재료'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어려운 책이라도 피하지 말고 부딪쳐보는 자세로 독서를 한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기에도 너무 단계적인 접근을 하기보다는 조금 도전적인 자세로 독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족독서모임을 처음 시작한 계기는?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정신적인 도움을 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착안했다. 애들이 중학생이 되자 입시위주의 공부에만 내몰리는 현실 앞에서 부모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우선 입시공부에만 몰두하라고 할 수도 없고, 입시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인생의 어떤 방향을 직접 제시하기보다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겸손한 마음으로 모색해 본다는 자세가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학교나 사회로부터 받는 교육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가정에서 아이들을 근본적인 면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희망에서 시작했다. 마을 어른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던 우리네 전통의 '사랑방 문화'를 오늘의 실정에 맞게 되살리고 싶다는 뜻도 있었다.

-매번 독후감을 써서 발표하게 했던데 독서에서 독후감이 중요한가?
▲논리력이나 문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독후감 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꼭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책을 읽고 나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느낌이나 생각한 내용을 메모해 두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중에 관련된 다른 책을 읽거나 새로운 생각을 전개시킬 때 이전에 읽었던 책의 메모를 떠올리거나 인용해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용적인 필요성도 있다. 물론 가족독서모임 같은 독서모임을 하기 위해서는 독후감 작성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독후감을 작성해서 서로 미리 공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여서 토론을 할 경우에는 즉흥적인 토론이 될 수밖에 없고 진지한 분위기로 재미있게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을 통해 두 아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았을 텐데 어떻던가?
▲독서의 성과는 쉽게 가시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오랜 기간을 두고 효과가 나타나더라. 또 점진적으로 향상한다기보다는 어느 한 계기를 통해 정신이 급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족독서모임을 하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어느 한 순간을 위해 네오클이라는 낚시를 기약없이 드리우고 있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이들과 독서모임을 계속하면서 교육은 목표 기간을 더욱 길게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가 스무살에 어떤 모습을 갖출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마흔살이나 쉰살에 어떤 모습일 것인가에 교육의 목표를 둘 수 있다면 더 좋은 교육에 다가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이 자녀들의 학교수업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는지?
▲물리적인 시간만으로 보면 학교공부에 할애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학교수업 지장 같은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고, 보다 부지런하게 노력하는 것은 학업 이상의 근본적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학업 성과에 있어서도 독서가 도움이 될 것이다. 학업에만 너무 몰두하는 것보다 잠시 한눈을 파는(?) 것이 생각의 영역을 넓힐 수 있어서 오히려 학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공부의 성과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생각하는 힘'일 텐데, 독서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때문이다(독서모임의 덕분이었는지 곽 검사의 장남은 법학을 전공해 고시를 준비중이고 차남은 중국에 반해 중국어를 전공중이다).

-학생들과 함께하며 거꾸로 학생들로부터 배운 것은 없는지?
▲사실 그런 점이 많다. 기성세대의 관점이 더 분별과 균형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학생들과 함께 토론을 하다 보면 중요한 논점에 있어서 기성세대가 오히려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부족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젊은 학생들의 생명력에서 우러나는 절실함 같은 것이 '진실'에 훨씬 다가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어떤 때는 학생들과 같이 토론하는 것 자체가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러 가지로 보건대 검사보다는 대학 강단에 더 어울리는 캐릭터 같은데.
▲과분한 말씀이다. 책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사실 훌륭한 검사가 되려면 인문학적 독서량이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이 개개 사건에 있어서의 정확한 결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문학에 있어서의 서정적인 면이나 시적 감수성도 인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검찰 업무의 중요한 목표인 사건의 실체적 진실 발견은 철학이나 문학에 있어서의 진실의 발견과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고 자주 생각한다.

-실용서적에 앞서 고전이 중요한 이유는?
▲실용서적은 어떤 구체적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인 측면을 다룬다. 그러나 어떤 실용적인 일이라도 그 일이 아주 정밀하고 어려운 영역으로 들어가면 결국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고전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는 점에 그 중요성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고전은 실용적인 일을 잘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실용적인 지식 자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 또한 물론 중요하고 당연한 것이다. 나아가 실용적인 필요를 떠나서라도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대답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물음'은 인간다움 자체이기도 하고 인간의 행복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왜 꼭 다른 가족과 더불어 모임을 하려고 했는가?
▲어떤 개인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한 가족이라는 단위가 객관성을 갖기가 쉽지 않다. 우리 가족 안에서만 타당한 어떤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범위에서 타당할 수 있는 좋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족과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가족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독단적인 주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대가 소통을 통해 장차 사회로 나가 활동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사회를 '확대된 가족'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할 수 있고,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 같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정으로 결합된 한 가족이 정신적인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회복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한 가족보다는 넓은 범위의 모임과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네오클을 이끌어오며 독서모임이라는, 본래의 의미 외에 부수적인 효과도 있지 않았나?
▲책을 통해서 이해하고 배우는 것도 있지만 여러 사람의 모임 자체를 통해서 배우는 것도 있었다. 사실 부모의 친구분이나 이웃 아저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 아닌가. 사라진 지 오래되는 '사랑방 문화'의 부활 같은 효과도 있었다. 그 아저씨나 그 아주머니가 어떤 책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주장을 하는지를 보고 자라면서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이 생각을 보다 주체적이고 넓게 가지게 되는 점도 있을 것이다. 세대 간의 대화를 통해 같은 또래들끼리만 모여서 이야기할 때 얻을 수 없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책은?
▲의외로 고전에 해당하는 책이 인기가 있었다. 청소년들도 궁극적으로는 인생의 어떤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들끼리 함께하는 독서모임이다 보니 아무래도 '가족', '교육', '결혼' 등을 주제로 하는 책들이 인기가 있었다.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섞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소설류도 상대적으로 더 인기가 있었다. 재미있게 읽고 토론했던 <호밀밭의 파수꾼>, <분노의 포도>,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아들과 연인> 같은 소설책들이 떠오른다.

◆곽 검사의 읽어보니, 좋던데요

◆<에밀> 장 자크 루소
자녀 교육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받은 책. 1762년에 출간된 고리타분한 책이지만 요즘 문제되는 여러 교육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료들이 모두 들어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교육'을 받지 않을 수 없고, 어떤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것을 적극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말고 자녀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서 도와주자는 관대한 주장도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문제다. 교육에 관한 루소의 견해를 잘 경청해 보면서 교육에 관한 부모 자신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젊은 시절 처음 읽었을 때 조르바라는 인물에 대해 의구심과 함께 일종의 '두려운 선망' 같은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쾌락과 정념에 그대로 솔직한 주인공 조르바는 젊은 시절에 쉽게 경도될 수도 있고, 반대로 쉽게 기피하거나 배척할 수도 있는 인물일 것이다. 인간의 운명과 죽음에 대한 대담하고 건강한 생각, 조르바가 딛고 서 있는 세계는 거칠고, 눈부시며, 야비한 세계다. 젊은이들과 나이든 세대가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역사본체론> 리쩌허우(李澤厚)
짧은 책이지만 인생의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결론적 대답이 담겨 있는 책이다. 서양철학의 흐름과 동양사상의 여러 갈래를 쉽게 잘 간추렸다. 경제결정론, 역사건리성(歷史建理性), 종교나 절대적 도덕 원리와 같은 선험적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변하여 선험이 된다는 경험변선험(經驗變先驗)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로써 참을 연다(以美啓眞)'는 저자의 통찰을 접하면 중국의 고전을 비롯한 여러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이 솟구칠 것이다.

◆<쉼보르스카 시집> 쉼보르스카
2012년에 타계한 폴란드의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직후인 1997년, 시집 <모래알갱이가 있는 풍경>을 통해서였다. '현대 시의 모차르트'라는 평가에 어울리는 날카로운 시어에 몹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불교의 공(空)사상이나 노장사상을 연상시키는 시들을 접하면서 시가 지닌 보편적 설득력의 힘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시라는 것이 감상적이고 몽롱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명료한 해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처음 할 수 있었다.

◆<잉카 최후의 날> 킴 매쿼리
2008년에 출간된 잉카제국의 멸망을 다룬 책.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최대한 인용하면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담담하게 써 내려가지만 긴박한 흥분을 자아내는 소설적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1532년 168명의 에스파냐인들이 8만명의 잉카 군대를 무참하게 살육하고 아타우알파 황제를 포로로 잡은 카하마르카 전투로 시작된다. 1000만명을 다스리며 군림하던 황제가 서구세계의 약탈자 몇 명에게 목숨을 구걸하게 되는 극적인 상황으로부터 잉카인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잉카제국의 멸망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책이다.

◆곽규홍 서울고검 검사 약력

▲충남 강경 생
▲서울 여의도고, 고려대 법학과 졸업.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19기 졸)
▲대구지검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법무연수원 교수, 대전지검 홍성지청장, 대구지검 2차장 검사, 창원지검 차장검사
▲서울고검 검사(현재 중앙지검 파견 근무 중)
▲저서 <가족과 함께한 행복한 독서여행>

윤승용 논설고문 yoon6733@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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