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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때문에 여성 노숙인 다 숨어버려” 기댈 곳 없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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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후 10시께 서울역 광장 한쪽 자리서 잠을 청하고 있는 노숙인들. 사진=한승곤 기자 asiae.co.kr

지난 28일 오후 10시께 서울역 광장 한쪽 자리서 잠을 청하고 있는 노숙인들. 사진=한승곤 기자 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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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지난 28일 오후 10시께 서울역 광장 인근서 여성 노숙인에게 기자가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그는 이 같은 말을 남기고 황급히 짐을 챙겨 자리를 떴다. 남성에 대한 공포감, 적개심 등 분노로 가득 찬 표정이 엿보였다.

이 노숙인은 서울역 인근서 서너 시간 동안 찾다 겨우 만난 여성 노숙인이였지만 황급히 떠나는 모습에 왜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지, 노숙 과정서 불편하고 힘든점은 없는지 질문할 수 없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여성 노숙인은 전체 11,340명 중 26%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을 거리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여성 노숙인들은 대형마트 주차장, 백화점 공중화장실, 인근 공원 등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역 인근서 장사하며 수많은 노숙인들을 만나고 또 대화도 해봤다고 밝힌 50대 상인 A 씨는 “(여성 노숙인들은) 집에서 각종 폭력적인 상황에 있다 보니 차라리 집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모두 마음의 상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여성이다 보니 아무래도 성추행 등 위험에 노출된 것 같다”며 “이런 이유로 여성 노숙인들은 다 숨어버린다. 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노숙인을 성별로 나눠 조사한 ‘서울시 노숙인 정책의 성별 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노숙인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정신질환에 의한 갈등을 포함한 가족 문제(43%)로 노숙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숙인 자활·재활 시설에 입소한 여성의 경우 약 60%가 비경제적 어려움인 가족 관계의 어려움을 들었다.


서울역 주변 지하도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노숙인들.사진=연합뉴스

서울역 주변 지하도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노숙인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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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노숙인 관련 통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 및 향후 대책’에 따르면 그해 10월 기준 노숙인은 1만1340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최근 5년간 여성 노숙인 현황을 보면 2013년 3204명(25%), 2014년 2929명(24%), 2015년 2883명(25%), 2016년 2899명(26%), 2017년 2814명(26%)으로 여성 노숙인 비율이 현저히 낮다.


통계의 이런 배경에는 거리 노숙을 최대한 피할 수밖에 없는 여성 노숙인의 특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한 활동가는 “여성의 경우 거리서 혼자 잠을 자거나 노숙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4월 대전광역시의 한 공터에서 한 여성 노숙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과 술을 마시는 과정에서 말다툼이 벌어졌고, 격분한 남성에 의해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서울역 인근서 만난 남성 노숙인들도 여성 노숙인들이 처한 상황에 잘 알고 있었다.


서울역 광장 한쪽에서 만난 50대 노숙인 B 씨는 “최근 여성 노숙인들의 모습을 본 적 있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여성 노숙인들을 못 본 게)최근뿐만 아니라 내 기억에는 한 5년 정도 된 것 같다”며 “여성 노숙인은 길에 나오는 순간 온갖 성희롱을 당한다. 그래서 다 숨어버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희롱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다면서 “한 남성 노숙인이 여성 노숙인과 함께 인근 허름한 여인숙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며 “이런 일이 많았다, 말로도 성추행을 많이 하고 그래서 다들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남성 노숙인 C 씨 역시 “성희롱이 너무 심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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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의 2017년 노숙인의 실태조사 결과 여성 노숙인에 대한 성추행, 성폭행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숙 생활 중 성추행, 성폭행 피해 경험 비율은 여성이 7.2%로 남성 0.5%보다 매우 높았다. 구타와 가혹 행위 경험도 여성이 10.7%로 남성 7.3%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노숙인이 성추행, 성폭력, 가혹 행위 등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통계로 입증된 셈이다.


하지만 여성 노숙인들이 마음을 기대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적다. 전국의 여성 노숙인 전용시설은 2017년 12월 기준으로 15군데에 불과하다. 이들 시설의 정원은 961명으로 여성 노숙인의 34.2%만이 수용할 수 있다.


전국 노숙인 시설은 118군데, 정원이 10,359명인데 반해 여성 노숙인을 위한 전용시설은 정원대비 9.3%에 불과하다. 여성노숙인 전용시설의 확충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문가는 여성 노숙인 중심의 새로운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도시연구 논문 ‘여성노숙인의 자립준비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신원우·황운성·김유경)’에서 전문가는 “여성 노숙인들은 가정폭력, 정신장애 등 비경제적 요인이 경제적 요인에 비해 더 중요한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노숙으로 인한 심리사회적 부적응은 자립을 더욱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에 대한 복지에 대해서는 “여성노숙은 기존의 남성노숙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복지서비스 대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들의 경험에 대해서 또한 새로운 시각과 분석이 필요하다. 여성노숙인의 특수성을 반영한 사회복지서비스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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