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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김용균씨 죽음은 '사회적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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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세희를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산업사회의 그늘을 선명하게 그려낸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한국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으니 말이다. 한데 100쇄를 훌쩍 넘긴 초 스테디셀러인 이 작품을 쓴 그는 과작(寡作)이다. 치열한 작가정신을 비춰 보면 1990년대 이후에도 그가 '발언'은 그치지 않을 법한데 어찌된 일인지 좀처럼 신작을 내지 않는다.

그런 그의 작품 중 '침묵의 뿌리(열화당)'가 있다.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광부와 그 가족들이 벌였던 노동항쟁, 이른바 '사북사태'를 다룬 책이다. 1985년 출간된 이 책은 묘하다. 단편소설도 들어있고, 현지 어린이 글도 담겼고 무엇보다 책의 절반가량은 사진으로 채워져 있어 그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 소설집이라기엔 지어낸 것이 아니고, 르포라 하기엔 감성적이며, 에세이치고는 현실참여적이다. 작가가 항쟁이 벌어진 지 4년 후에 현장을 찾아 '기록'한 이 책은 먹먹하고 의미심장하다. 거기 나오는 구절이다.
"알리바이라면 우리 시대의 시민 모두가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땅 어느 곳의 역사가 20년밖에 안 된다는 것은 곧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용균씨의 죽음과 관련된 뉴스들을 접하다가 기억을 되살려 발견한 구절이다. 24세 청년. 입사 3개월 만에 불과 사흘간의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된 비정규직. 그는 지난 11일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 중 몸이 끼어 숨졌다.

위험한 작업환경인 만큼 2인1조 근무를 요청했지만 발전소 측은 거부했다고 한다. 탄가루가 날리는 어두운 공간을 3~4㎞ 걷는 업무인데도 헤드랜턴은 구경도 못했다. 휴대전화 조명으로 작업을 했다 한다. 회사에서 지급한 손전등을 분실했지만 추가 신청하면 불이익을 받을까봐 자비로 손전등을 샀단다. 그마저도 고장 났다던가. 이 밖에 그의 유품으로는 근무시간에 쫓겨 식사대용으로 먹곤 했다는 컵라면 몇 개, 탄가루가 밴 작업복 정도가 다였다. 비용 절감을 앞세운 안전 불감증, 요즘 표현으로는 '위험 외주화'에 몰려 그렇게 한 꽃다운 청춘이 졌다.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 측이 사고 직후 경찰에 알리기 전 관련자들의 입막음에 먼저 나섰다는 이야기는 차마 듣지 못할 지경이다. 2인1조 작업 실시 등 정부가 당장 내놓은 '대책'이란 것도 민망하다. 현재 조건이라면 노동자들의 업무량만 늘리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이란 비판이 타당해보여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국가의 책임이다." 지난해 12월 인천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한 선언이다.

이에 앞서 2016년 5월 지하철 승강장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19세 청년이 숨진 '구의역 사고' 이후 비정규직 안전문제를 놓고 온 사회가 들끓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정부가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11월 국회에 송부했다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은 데서도 이런 무관심은 여실히 드러난다.

김용균씨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다. 자연재해나 한순간 부주의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바라보는 나라에서 정치권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방관하는 사이에 개발도상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구조적 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오는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용균씨 추모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거기 참석 여부를 떠나 우리 모두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하고.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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