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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암수살인, 도대체 어떤 사건이길래…‘살인 리스트’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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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수살인’의 주연 배우 김윤석(좌)과 주지훈(우).사진=영화 ’암수살인’ 스틸 컷

영화 ’암수살인’의 주연 배우 김윤석(좌)과 주지훈(우).사진=영화 ’암수살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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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살해 수법이 잔혹했을 것으로 보이고, 유족들이 7년 넘게 막막한 시간을 보냈으며, 자백과 번복으로 수사기관을 농락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2016년 1월 부산지법 형사5부(권영문 부장판사)는 이같이 판시한 뒤 피고인 A 씨에게 무기징역과 위치추적장치 부착 30년을 선고했다.

A 씨는 유흥주점의 여성 종업원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두홍(가명)이었다.

재판부가 질타한 ‘자백과 번복으로 수사기관을 농락했다’는 배경은 그가 한 형사에게 언급한 이른바 ‘살인 리스트’ 때문이다. 이 리스트는 이 씨가 감옥에서 형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하지만 대부분이 근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 또는 허구에 불과했다.
결국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을 말하는 ‘암수살인’ 이었다. 하지만 이 중 1개의 사건은 그 실체가 밝혀져 이 씨는 처음 교도소에 수감될 때 살해 혐의로 15년 형을 받았다가 이후 무기징역을 선고 받게 된다.

‘암수살인’의 진실과 관련해 지난 2012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송된 ‘감옥에서 온 퍼즐’ 등을 통해 살펴봤다.

영화 ’암수살인’의 주연 배우 주지훈(좌)과 김윤석(우).사진=영화 ’암수살인’ 스틸 컷

영화 ’암수살인’의 주연 배우 주지훈(좌)과 김윤석(우).사진=영화 ’암수살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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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명의 사람을 더 죽였다…나를 만나러 오라”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씨(51)는 김정수 형사(당시 부산시경 마약수사대)의 형사의 정보원에게 “사람을 묻었다”는 말을 하고 다녔고 이 정보원은 이 씨와 김 형사와의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이 씨는 이 자리에서 “물건을 몇 개 옮겼는데, 그게 사람 같다”고 말했다. 김 형사에 따르면 ‘물건이 몇 개’라는 것은 시신을 토막을 냈다는 뜻이고 ‘옮겼다’는 건 시신 유기 의미인 암매장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씨와 김 형사는 이후 6차례를 더 만났지만, 이 씨는 “더 이상 묻지 말라”, “말한 게 전부다”라는 식으로 김 형사 답을 피했다.

이후 이 씨는 “2003년 대구에서 사라진 신 아무개 씨(여·당시 34)를 찾아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이 씨는 2010년 9월10일, 주점 여종업원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토막 내 유기한 혐의로 부산 서부경찰서에 검거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9월3일 오전 5시30분께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한 주유소 인근 국도변 차 안에서 주점 종업원 아무개 씨를 살해한 뒤 경남 함양군 아리랑 고개의 습지 풀숲에 사체를 매장했다.

이후 이 씨는 수감된지 3개월이 지난 11월 교도소에서 김 형사에게 편지로 “10명의 사람을 더 죽였다”면서 “7건은 나를 배신하고 망하게 한 사람들, 3건은 술을 마시고 홧김에 살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를 만나러 오라”고 덧붙였다.

결국 교도소 접견실에서 이 씨를 만난 김 형사는 “편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자술서를 써라. 있는 그대로 다 써보라”고 말했는데, 이 씨는 곧바로 자술서를 써 내려갔다.

김 형사에 따르면 이 씨는 자술서 두 장을 모두 채우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자술서는 이른바 ‘살인 리스트’ 였다.

전문가는 그의 이런 행동에 대해 일종의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고 분석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이 씨 행동에 대해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그는 스스로를 강하다. 대단하다고 포장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한데, 교도소에는 방법이 없었다”면서 “김 형사만큼 그의 삶의 존재를 확인시켜준 사람이 없다. 따라서 이 씨는 이 게임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김 형사가 이 게임에서 떠난다는 것은 결국은, 나는 굉장히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고 의미가 없는 사람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배우 김윤석. 사진=영화 ‘암수살인’ 스틸 컷

배우 김윤석. 사진=영화 ‘암수살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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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개의 ‘살인 리스트’…이 중 진짜는 무엇인가

당시 이 씨가 주장한 살인 리스트 내용을 종합하면 모두 10건으로 ①30대가량 여성 살해 후 강서 낙동강 갈대숲 유기 ② 자신의 동거녀 신 씨 살해 암매장 ③ 전주 홍 사장, 일명 노름방에서 꽁지돈 주는 사람 살해 매장 ④ 부산 서구 OO동 소재서 성인용품 여자 살해 ⑤ 택시할 때 연상동 로타리 부근 20대 후반 여성 살해 매장 ⑥ 택시할 때 대구 노름방에서 알고 지내던 박 씨 살해, 광안대교서 바다에 던져 은닉 ⑦ 흉기 살해 ⑧ OO 나이트 클럽 관련 살해 ⑨ 택시할 때 새벽 1시께 무시한다는 이유로 여성 손님 살해 은닉 ⑩ 택시할 때 교대 부근에 40대 초반 여성 말다툼 끝에 차량에서 목졸라 살해 등이다. 여기서 ‘택시할 때’ 는 이 씨가 택시 기사로 일할 때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과거 이 씨가 김 형사와 만난 식사 자리에서 언급했던 ‘2003년 대구에서 사라진 신 아무개 씨(여·당시 34)를 찾아보라’ 라고 말한 신 씨도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 (② 자신의 동거녀 신 씨 살해 암매장)

이 씨는 신 씨 관련 “내가 알려주는 대로만 하라”며 총 두 장의 약도를 그려줬다. 약도를 보고 김 형사는 신 씨를 유기할 때 쓴 가방을 버린 장소로 찾아갔다. 그는 이 장소에서 이 씨가 알려준 “던지니까 가방이 열린 채 쭉 미끄러져 나무에 걸렸다”는 설명 그대로, 가방을 발견했다.

이 씨가 알려준 또 다른 약도는 그의 고향인 경남 함양이었다. 이곳에서 김 형사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 산 속으로 들어가 나무들을 헤치고 이 씨가 지정해 준 장소에서 신 씨의 유골을 찾아낸다. 유골에서는 골절과 절단 흔적이 보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실종된 신 씨였다.

하지만 이 씨는 돌연 “제가 그렇게 흉악범인 줄 아셨습니까”라며 그간 자신이 언급했던 내용을 전면 부인한다. 그는 “신 씨 (살인)도 제가 한 것으로는 (생각) 마세요”라며 “이쯤에서 끝내세요. 더 이상 하면 되돌릴 수 없을 겁니다. 제가 한 것 같으면 10년이 넘어 들춰냈겠습니까.”라며 김 형사의 수사망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 씨 주변인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이 씨는 신 씨와 동거를 하면서 평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 또 앞서 이 씨는 지난 2004년 8월5일 경찰에 자진출두해, 신 씨 실종 당시 자신은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있었다며 알리바이를 내세웠다.

실제로 당시 경찰은 신 씨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과, 통화내역을 조사했지만 범죄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신 씨 실종과 사망에 대해 결국 그는 무혐의로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김 형사는 그가 동거하던 자택 집 주인을 통해 이 씨와 신 씨가 만났다는 진술을 확보, 신 씨 실종 당시 이 씨가 주변에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사진=영화 ‘암수살인’ 스틸 컷

사진=영화 ‘암수살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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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거녀 신 씨 유골 발견하자… “나는 전국구다…이것부터 풀어 봐라”

이 과정에서 이 씨는 김 형사에게 새로운 제안을 시도한다. 이 씨는 “내가 택시 회사에 있던 시간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건을 조합하면서 수사해 봐라. 나는 전국구다”라며 “이것부터 풀어 봐라. 신 씨 사건은 가장 마지막에 (기소)하자”고 말했다.

상황을 종합하면 김 형사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 씨는 새로운 살인 사건을 알려주며 이 사건부터 해결하고 신 씨 사건을 검찰에 기소하자는 제안이었다.

김 형사는 이 씨가 언급한 ‘택시’ 가 사건 중심에 있는 사건을 분석, 수사를 시작한다. 이후 김 형사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 씨는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그는 범행동기에 대해 “연산동에서 술 취한 여성 손님을 택시에 태웠는데 구토를 했다”면서 “(구토한 것에 대해) ”항의하자 여성이 ‘세차비 주면 될 거 아니가’라며 10만 원 수표 던지고 화를 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그래서 홧김에 차량에서 폭행 후 살해했다. 인근 마을 묘지에서 시신을 토막 냈고, 낙동강 갈대숲에 유기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이 씨는 시신 유기 장소를 그려줬다. 하지만 김 형사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현장은 공사로 인해 범행현장 일체가 훼손돼 유골 등 관련 증거 확보를 할 수 없었다.

이후 열린 재판에서 법원은 2003년 1월24일 신 씨 살인만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살해 수법이 잔혹했을 것으로 보이고, 자백과 번복으로 수사기관을 농락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택시 안에서 구토를 하고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살해했다는 사건에 대해서 법원은 혐의입증불가로 유죄 선고를 하지 않았다.

배우 주지훈. 사진=영화 ‘암수살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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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홍, 지난 7월 자살…유족 ‘인격권 침해 상영금지가처분 신청’ 냈다가 소송 취하

종합하면 그가 언급한 10건의 ‘살인 리스트’ 중 2번에 해당하는 무기징역 선고를 받은 ‘동거녀 살해 암매장 사건’ 만 유죄를 선고받았다. 나머지는 혐의입증 불가, 증거불충분, 허구 등의 이유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김 형사는 여전히 그가 밝힌 사건의 실마리를 수사하고 있다.

한편 이 씨는 지난 7월 중순께 부산교도소 독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산교도소 관계자는 ‘노컷뉴스’에 “(이 씨가) 독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며 “신변을 비관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영화 ‘암수살인’이 개봉을 앞두고 피해자 유가족은 배급사 쇼박스를 상대로 영화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후 1일 유가족의 소송대리인은 “피해자 유족은 지난달 30일 저녁 영화 제작사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다”며 “이에 따라 지난달 20일 제기한 가처분 소송을 취하했다”고 전했다.

유가족은 제작사의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영화가 암수(暗數) 살인 범죄의 경각심을 제고한다는 영화 제작 취지에 공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 중 일부가 영화 상영을 원한 점도 입장 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유가족은 영화 ‘암수 살인’이 실제 범행 수법과 장소, 시간, 등을 동일하게 재연해 고인이 된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지난달 20일 상영을 금지해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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