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요소로서 영토 개념은 우리 헌법에도 반영이 돼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헌법 제3조가 바로 그것이다. 영토가 가지는 속성에 관해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영토 점유는 공간에 최초의 질서를 세우고 그로부터 기인하는 모든 구체적인 질서와 법의 근원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고, 독일의 신학자 파울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는 '권력은 한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존재 능력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리적 공간'이라고 했다.
국방력이 영토의 유지와 직결되는 힘이라는 것을 우리는 우리 역사 속에서 수없이 경험해왔다. 나라를 잃기도 했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으며, 냉전의 첨단에서 대리자로 존재해야 했다. 이 때문에 '병역'은 국가에 있어 신성(神聖)의 지위에까지 이르게 되었지만, 각 개인은 철저히 매몰되고 객체화된 자원(資源)으로 관리돼야 했다.
이런 우리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2018년 6월28일에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제5조 제1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실로 역사적인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은 기본권 제한의 가능성을 규정하면서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의 병역법 제5조 제1항은 군사 훈련을 수반하는 병역만을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병역법 제5조 제1항은 명목상으로는 양심 실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양심 실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인 양심 형성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어쩌면 이번 결정은 인간 존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가 가지는 기본권 내에서의 지위와 우리 헌법 체계 그리고 국제 인권적 기준에 비춰 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결정에도 분단 국가라는 우리의 특수한 현실과 이로 인한 국방 문제의 민감성, 국민 일반의 인식,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파생될 여러 문제점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과 이해는 당연히 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이전 시대와의 종말을 고한 이번 결정이야말로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모든 이데올로기와 그 일시적인 승리는 그 시대와 더불어 종말을 고한다. 오로지 모든 이념 중의 이념, 절대로 패하지 않는 이념인 정신적 자유의 이념만이 영원히 되살아나온다. 그것은 정신처럼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슈테판 츠바이크ㆍ'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287~288쪽) 그렇기에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한반도 평화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임지웅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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