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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하는 재혼, '혈연 없는 가족애'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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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준비된 가정, 안전한 미래' <9> 재혼 '가족의 재탄생'

두번 실패할 수 없다는 생각에 부모는 이상적 가정 꿈꾸지만
새가족 관계가 사회생활까지 영향…친부모에 대한 마음도 이해를
재혼부부·자녀 모두 전문교육 받으면 도움
아이와 함께하는 재혼, '혈연 없는 가족애'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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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이현우(19) 군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엄마는 현우와 동생을 데리고 재혼했다. 새아빠는 술만 마시면 엄마를 괴롭히고 때리기까지 했다. 그때마다 현우는 새아빠를 막아서며 꽉 잡거나 밀치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또다시 술을 마신 새아빠는 급기야 현우마저 때렸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현우는 뇌에 금이 가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경찰 조사를 받은 새아빠는 접근근지명령에 이어 아동학대 판결을 받았고, 엄마는 새아빠와 그렇게 갈라섰다. 현우는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요즘 들어 부쩍 '이다음에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현우는 "엄마와 함께 살았던 그분도 자신이 어른으로서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배웠다면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 실패할 수는 없다는 신념은 때론 지나치게 이상적인 가정을 꿈꾸게 한다. 재혼 가정에서 부모는 이제 한 가족이 됐으니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싹트리라 오매불망 기대하지만, 자녀는 반대로 전래동화 '콩쥐팥쥐' 속 이야기처럼 새엄마가 자신을 굶기고 괴롭힐지 모른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재혼 가정,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당면하는 현실적인 문제의 난도 자체가 다르다. 앞서 배우자나 부모의 죽음 또는 별거와 같은 가족 상실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여태껏 서로 다른 경험과 전통,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이제 막 한 집에 한 가족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새 부모와 새 형제·자매 뿐 아니라 새로운 친족 관계가 생겨나고 거주지를 옮기면서 학교를 전학하는 경우까지 자녀 입장에서는 모든 인간관계, 모든 주변 환경이 한꺼번에 변하는 충격 속에 놓이기도 한다.

일반적인 혼인 가정은 부부가 먼저 가정을 이루고 이후 자녀가 생긴다. 하지만 재혼 가정은 이미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부부관계가 맺어지므로 관계나 적응 측면에서도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재혼 가정의 구성원들이 경험하게 되는 혼란과 갈등을 제 때 해결하지 못하면 이들은 또다시 힘겨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새 가족과의 새로운 관계는 자녀가 친구를 사귀고, 이성친구를 만나고, 사회활동을 하거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다.
김미옥 경성대 심리학과 교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새부모가 친부모와 동등한 입장에서 자녀를 야단칠 수 있게 되기까지 평균 1년6개월에서 2년 정도 걸린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나의 뿌리가 어디이고 난 어디에 소속돼야 하는가 하는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아이는 대인관계에서도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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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새 부모와 새 자녀, 또는 새 형제자매 간에서 생겨나는 갈등이 대부분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양육방식에서 비롯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본인의 자녀를 키워보지 않은 상태에서 새 자녀를 맞게 되거나, 또는 본인의 자녀에 대한 나름의 양육 방식이 정립된 상태에서 재혼한 부부가 훈육이나 양육 방식을 일치시키지 않으면 자녀는 어느 쪽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할지 혼란을 겪게 된다.

재혼으로 새 자녀가 생기더라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직접 양육하고 성장과정을 지켜본 경우와 아동기를 거쳐 청소년이 된 새 자녀와 만난 경우는 부모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데서 큰 차이가 있다.

변복수 숭실대 부부가족상담연구소 박사는 "일반 가정에서도 한창 예민한 시기인 사춘기 자녀들이 부모에게 대들고 반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재혼 가정의 경우 새 부모가 아무리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하려 해도 사소한 일로 오해나 서운함이 생겨나기 마련"이라며 "새아빠나 새엄마가 직접 훈육하기보다는 일단은 친부모가 훈육하도록 놔두다가, 점차 친밀감이 쌓이면 새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재혼 가정의 아이들은 동시에 헤어진 부모를 잊지 못하고, 잊으면 안될 것 같은 죄책감에도 시달린다. '새엄마를 잘 따르면 친엄마가 섭섭해하지 않을까', '친엄마 생각을 많이 하면 새엄마가 나를 미워하겠지'하는 두려움은 새 가족에 적응하고 소속감을 갖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김효순 세종사이버대 상담심리학부 교수는 "부모는 자녀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최대한 자녀의 입장에서 공감하려 노력해야 한다"며 "새로운 가족 안에서도 친부모가 여전히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가능한 자주 표현하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또 우리사회가 재혼 가정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혼 가정이 사실은 보통의 혼인 가정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재혼을 결정하기에 앞서 재혼 가정에는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알려주고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혼 당사자인 부부뿐 아니라 자녀들도 여러 차례에 걸쳐 전문적인 교육과 상담을 받으며 현실을 이해하고 변화에 적응하도록 하는 방법이 새 가정에 대한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정서를 최소화할 수 있다.

김미옥 교수는 "재혼 부부의 유대감이 높고 관계가 안정적일 수록 자녀들은 이 가정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며 "재혼 전 자녀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재혼 후에도 가족 내 갈등과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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