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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다랭이논/조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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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마에
다랭이논 대여섯 마지기나
버시고 계셨다
나는 그 다랭이논에서
보리며 벼를 먹고 컸다

그곳도 처음엔
보리와 벼가 자랄 수 없는
버려진 잡초들로 가득했으리
삶에 파이고 세월에 깎이면서
다랭이논이
산비탈에 만들었을 터
반달같이 누워 계신
어머니 병실에
봄 햇살 한 광주리 찾아와
다랭이논에 부려 놓고 간다


■얼마 전 오랜만에 엄마를 따라 오일장이 서는 시장엘 갔었다. 감자도 사고 귤도 사고 달래도 사고 그랬는데 가는 곳마다 상인들과 엄마는 서로 인사를 하고 반가워했다. 그러다 깻잎을 사러 간 난전에서 나물을 팔던 할머니가 자꾸 "할머니, 그거 말고 이거 가져가. 이게 좋아, 할머니." 그러는 게 아닌가. 난 한동안 그 말이 우리 엄마에게 하는 말인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손님이 엄마와 나 둘뿐이니 '할머니'라는 호칭은 당연히 엄마를 향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좀 뚱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인동쑥을 사러 간 곳에서도 '할머니', 딸기를 사러 간 데에서도 '할머니' 그러는 게 아닌가. 아이코야, 나만 몰랐다, 엄마가 '할머니'인 줄은. 엄마 이마에 새겨진 주름들이 사십이 넘어서야 겨우 보이기 시작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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