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에 남은 건물과 구조도. 메이지시대 만들어진 것은 제방 정도이며, 1931년까지 매립공사가 계속됐다.(사진=나가사키시 군함도 홈페이지/http://www.gunkanjima-nagasaki.jp/ko)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일본이 군함도와 관련해 한결같이 벌이는 '꼼수'는 태평양전쟁기 강제징용 내용을 완전히 빼고 군함도 자체를 메이지유신의 유산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이곳을 최대한 19세기 산업혁명기의 유산으로 묘사하려는데는 나름의 계산이 숨어있다. 19세기는 제국주의 시대였고, 서구 열강들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소위 제3세계에서 벌인 강제노동, 학살 등에 대해 전혀 사과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에 편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 즉, 나가사키현 하시마탄광은 '메이지(明治) 일본 산업혁명 유산'으로 불린다. 그러나 실제 군함도에서 메이지시대 만들어진 것은 섬 매립 당시 쓰이던 제방들 뿐이다. 이 섬은 1890년 이후 6차에 걸친 매립작업을 벌였으며, 1931년에 매립이 끝나고 나서 본격적인 탄광활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하시마 탄광이 최초 발견, 채굴을 시작한 것을 1810년까지 올려잡고, 미쓰비시그룹이 섬을 인수한 1890년 이후로 일본의 근대 광산업 발전을 견인한 지역으로 선전하고 있다.
1897년부터 1931년까지 6차에 걸쳐 진행된 군함도의 매립 과정도. 매립공사 이후부터 사실상 탄광 기능을 수행했다.(사진=나가사키시 군함도 홈페이지/http://www.gunkanjima-nagasaki.jp/ko)
원본보기 아이콘나가사키시에 위치한 다카시마 탄광자료관. 다카시마는 하시마섬 바로 옆에 위치한 또다른 탄광으로 나가사키시는 하시마섬을 다카시마 탄광과 함께 메이지시대 근대화 유산으로 광고하고 있다.(사진= 나가사키시 군함도 홈페이지/http://www.gunkanjima-nagasaki.jp/ko)
원본보기 아이콘철저히 20세기 전쟁범죄의 유산을 19세기로 끌어올리면 얻는 효과가 많아진다. 태평양전쟁기 강제징용 문제를 희석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당시 서구열강이 제3세계에 행했던 학살 중 일부 정도로 묻어갈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실제로 서구 국가들은 1,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유태인 학살이나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과거사 반성에 나서고 있지만, 제국주의 시대 벌어진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주민들에 대한 학살과 강제노동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사죄에 나서지 않고 있다.
보통 일본과 대비해 전쟁범죄에 대한 과거사를 인정한다는 독일에서도 과거 19세기 식민통치를 벌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사과에는 매우 인색하다. 독일은 1890년,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를 식민지로 삼았었는데 1905년에 주민들이 식민통치에 반발해 봉기하자 30만명을 학살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다른 식민지인 나미비아에서도 대량학살을 벌여 지역 종족을 거의 몰살시켰다.
하지만 집단학살을 인정한 것은 110년이 지난 2015년이었으며 7190만 유로 수준의 보상을 할 계획이지만 피해자 후손들에 대한 직접 보상은 거부했으며 재단을 만들어서 인프라 개발 등에 나서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에 후손들이 집단 반발해 뉴욕 연방법원에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프랑스, 폴란드는 물론 유태인들에게 매년 나치 만행을 사과한다는 독일도 이처럼 19세기 제3세계에 벌였던 만행에 대해서는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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