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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時]만복사주차기(萬福寺駐車記)/함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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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꿈을 꾸었다
인간의 꿈을
꿈에서 그는 철학자였고
시인이었고 고귀한 영혼이었으므로―나비야, 꿈을 깨자
꿈을 깬 나비는
깨달은 자(之)였다

만복사지(萬福寺址) 너른 터를 날아다녔다
아직 이른 봄인데도
꽃비가 내리고

주차장 바닥을
한 미물이 기어가고 있었다

■이 시에는 두 겹의 이야기들이 스며 있다. 하나는 장자의 '호접몽'이고, 다른 하나는 김시습의 소설 <만복사저포기>다. '호접몽'은 다들 잘 알 것이고, <만복사저포기>는 쓸쓸하게 지내던 양생이라는 총각이 부처와 저포 놀이를 해 아름다운 처녀를 얻어 며칠 간 사랑을 나누었는데 실은 그 처녀가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었다는 그런 애틋한 이야기다. 그리고 만복사는 고려 문종 때 지은 절로 남원에 있는데 현재는 절터와 몇몇 문화재들만 남아 있다고 한다. 이상의 디딤돌들을 놓고 이 시를 건너다 보면 사람의 생이라는 게 문득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고 또 그런 만큼 지나온 모든 인연들이 살뜰해 괜히 안타깝기도 하고 여하튼 쉽사리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마치 나비가 '갈 지(之)' 자처럼 이리 펄럭 저리 펄럭 날아다니듯 말이다. 그런데 봄 하늘을 팔랑팔랑 나는 나비를 보고 있자면 다른 한편으로 그 모습이 자재무애(自在无涯)하다는 생각도 든다. 신기하지 않은가. 한 형상 속에 미망(迷妄) 속을 헤매는 마음과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깨달음이 함께 깃들어 있다는 것이. 그건 그렇다 치고 저 "미물"이 자꾸 나인 것만 같아 속상한 봄날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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