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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사람이 사람에게/홍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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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덕소(德沼) 근처에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 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는 걸
입 닥치고 강 가운데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뉘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 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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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언 손을 마주 잡고 걸어갑니다. 그 뒤를 이어 또 한 사람이 걸어갑니다. 그 곁으로 또 다른 한 사람이 걸어갑니다. 그들 위로 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립니다. 무장무장 내립니다. 첫눈을 맞으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해 환하게 웃습니다. 첫눈 때문입니다. 첫눈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입니다. 첫눈처럼 다시 처음 만난 사람들입니다. 오가다 서로 스쳤을지도 모르겠지만 첫눈처럼 오늘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서울에서도 그랬고 광주에서도 그랬고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창원에서도 마침내 저 멀리 거제도에서도 그랬습니다. 모두들 첫눈을 맞으면서 때론 겨울비를 맞으면서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고 촛불을 밝혔고 그렇게 "묵묵히 넓어지"고 흐르고 흘러 서로를 감싸고 서로에게 스미고 스며 "위안"이 되었습니다. 강이 되었습니다. 사람이니까 그랬습니다. 우리는 사람이어서 서로에게 더할 수 없는 "위안"이어서 아무리 참담하고 아무리 자괴감이 들더라도 첫눈처럼 서로를 밝히고 서로를 껴안았습니다. 말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첫눈처럼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해 겨울 첫눈이 오고 눈꽃혁명이 휘날렸더라고.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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