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정부세종청사에서 만난 A국장은 '더치페이로 식사 한 번 하자'는 제의에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일상적으로 만나온 기자들이나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의 식사 약속조차 잡지 않는다.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갔다가 혹여라도 경품 당첨될까 인사만 하고 서둘러 귀가했다"고 했다. 세종시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간부급 공무원들이 A국장과 비슷한 말을 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공무원들은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청탁금지법을 내심 반긴다. '저녁 있는 삶'이 시작됐다는 말도 종종 들린다. 세종시 공무원의 배우자와 가족들이 반긴다. 주부 C씨는 "매일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하던 남편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집에서 식사를 한다"면서 "저녁에 애들과 아파트단지 산책도 하거나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나인투식스(9 to 6: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기)'에 원칙적으로 반대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생산성이 문제다. 근무시간 동안 일에만 열중하는 지,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지 생각해야 한다. 민원인에게 갑질하지 않고 공무, 영어로는 퍼블릭서비스(public service)를 제대로 하는 지도 고려할 부분이다. 창의적으로 일하고, 자신의 업무를 개선해가고 있는 지도 중요하다.
세종시로 중앙부처가 옮겨간 초창기, 당시 공무원들은 세종시를 '세베리아'라고 불렀다. 세종시와 시베리아를 합친 말이다. 2016년 10월, 세종시에 다시 '시베리아'가 찾아왔다. 세종시의 업무 비효율에 청탁금지법 시행, 정권말기의 레임덕(권력누수)까지 겹치면서 공직사회가 멈춰 섰다. 민간과 소통하는 공무원이 사라졌다. '열심히 일해서 나도 장관이 되고 싶다'는 젊은 사무관도 사라졌다.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분위기만 유령처럼 공직사회를 뒤덮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탁금지법) 시행 초기이다 보니 다소 혼란스러운 점도 있고 공직사회에선 아무도 안 만나면 된다는 식의 극단적인 몸 사리기 형태도 일부 나타난다고 한다"며 적극적인 모습을 주문했다. 그런다고 현장에서 대통령의 말대로 행동할 공직자는 없다. 1년2개월만 지나면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된다. 지금은 장관을 나무라고 공무원을 다그쳐서는 땅에 붙어있는 배를 떼어낼 수 없다. 집권 후반기 막판 스퍼트를 위해, 공무원들을 만나라. 거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을 몸소 실천할 때다.
조영주 세종취재본부 팀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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