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은 이때부터다. 돌아온 여성 운전기사는 다짜고짜 자기를 도우려 했던 청년을 지목해 당장 내리라며 짐을 버스 밖으로 던져 버린다. 승객들도 빨리 목적지에 가겠다는 욕심에 청년을 쫓아낸다. 하는 수 없이 길을 걷던 청년의 눈에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 타고 온 바로 그 버스다. 청년은 운전기사와 승객 모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아연실색한다.
사회적 방관·침묵을 비판하는 일화·우화는 그 외에도 많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던 유대인들이 탄 기차 안에서 한 젊은이가 소리쳤단다.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나,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잡아가느냐." 그러자 조용히 앉아 있던 한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이다."
나중에 오보임이 드러나긴 했지만 '제노비스 신드롬'도 대표적 사례다. 1964년 뉴욕에서 캐서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칼에 찔려 살해당했지만 이를 목격한 38명의 주민들이 신고하지도 도와주지도 않은 채 방관했다는 충격적 사건이다.
우리사회라고 다를까. '침묵의 합창단'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 결과 세월호 사고 등 온갖 사회적 참사가 끊이질 않는다. 누구 탓일까. 일차적으로 시민의 눈과 귀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이 가장 큰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자성해 본다. 정의를 실현해야 하고 공정해야 할 공권력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은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 청년과 침묵하지 않은 덕에 죽음을 면한 버스44의 청년, 그 갈림길에 서있다.
김봉수 사회부 차장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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