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시샘]내 얼굴에서 지구를 발견하다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얼굴을 뒤지면
저렇게 작은 지구 여러 개 있다.
지금은 64억㎞를 지나와서…
내 얼굴에 있는 점을 본다.
멀리서 나는 본다.
까마득한 거리
내 얼굴의 점 하나를 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거리를 비행한 다음이어야 하나
흘러와서 점 하나 쯤 남기고
우주 저편으로 떠도는 동안
내가 거울 앞에서 고개를 돌려 내 점을 언뜻 보는 순간이
64억㎞의 거리를 지난 시간이라는 사실
적어도 내 점 하나에는
수 천 명의 이름이 들어있다.
무거워, 얼굴을 나누며 오고 간다.
그 먼 밖에서 나를 보고 있었으니
겨우 고작, 이라는 말 배워서 가끔 써먹고 있을 뿐이었지.
거울을 보면
이미 오래전에 나는
나를 지나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둥둥 떠 갈수록 나와는
영영 만날 수 없다는 사실
오늘은 눈이 내리고
지구는 여전히 헛바퀴를 돌고 있다.

-박해람의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은 64억㎞ 바깥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했다. 깨알만큼 작은 그 푸른 점이, 시인 박해람의 얼굴 위에 올라와 앉을 때 시적 충동들이 쿵쿵대며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내 얼굴 위에 있는 점이 우주 속에 떠돌고 있는 지구별로 보이기 시작할 때 얼굴은 천체만 해지고 살 속에 반쯤 박혀있는 별들은 신비하고 아름답다. 얼굴에 둥둥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 별들을 무심히 지나쳐왔듯 나는 나를 여러 번 지나쳐와 버렸고 다시는 그때의 나를 만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크기와 거리와 시간에 대한 굳은 관념을 깨며, 상쾌한 우주의 민낯을 찾아 보여준 시인이 참 멋지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