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입장에서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였던 계열사 한유통과 웰롭 지원 행위에 대한 판결을 유죄로 뒤집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과다한 부채로 위기에 빠진 편의점사업체 한유통과 물류사업체 웰롭 등 임직원 차명소유 방식의 위장 계열사에 대해 한화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이 수천억원의 손실을 무릅쓰고 부동산 헐값 매각과 고가 매입, 다단계 합병 등으로 지원한 것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김 회장이 피해 회사들에 대한 변상으로 1181억원을 공탁한 점을 감안해 징역 형량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대기업의 집단이익을 위해 계열사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부동산과 기업의 가치를 임의로 조작하는 불법을 저지르면서 위장 계열사를 지원한 것은 합리적 경영판단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김 회장 개인의 유무죄를 넘어 깊이 생각해봐야 할 쟁점이 발견된다. 우선 재판부가 거론한 '대기업의 집단이익'이라는 게 뭐냐는 것이다. 이것은 맥락으로 보아 변호인이 말한 '그룹 이익', 즉 '기업집단 전체의 이익'과 같다. 변호인은 이것을 고려해 '기업집단 차원의 경영행위'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법이 그렇게 돼 있지 않다면서 거부한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기업집단을 총괄 경영하는 그룹 총수의 역할과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이것이 또 하나의 쟁점이 된다.
김 회장에 대한 재판에서 이런 쟁점들이 부각되는 것은 '그룹 총수'가 법률상 시민권을 얻지 못한 채 유령처럼 떠도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현행 회사법은 개별 기업만 정의하고 규율할 뿐 기업집단에 대한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그래서 기업집단의 회장이나 총수가 비존재의 존재, 즉 유령이 되고 만 것이다. 공정거래법과 세법 등 일부 법률에서는 기업집단을 실체로 인정하지만 이는 규제와 과세의 대상으로 그러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막강한 존재를 과시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재벌 총수가 법률상으로는 존재의 권리는 없이 책임만 지게 돼 있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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