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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상품의 가치, 쪼갤수록 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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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산업혁명이 대량생산과 그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켜 우리 삶의 질을 눈부시게 향상시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발명이라기 보다는 발견에 가까운 와인은 인류와 함께 유구한 역사를 함께 해 온 자연의 산물로서 기본적으로는 농산품적 속성을 갖는다. 와인의 품질은 포도 재배지의 기후와 자연조건에 절대적 영향을 받으며 고급 와인일수록 원료인 포도공급의 탄력성이 매우 낮아서 공급 가능처와 공급량에 큰 제한이 따른다. 하지만 포도재배와 와인양조에 있어서 기술적 진보와 와인시장의 확대에 따라 공산품적 속성 역시 갖게 됐다.

일반적으로 저가 와인으로 갈수록 생산설비는 대형 장치산업적 외형을 보이며 조직적인 대형유통망을 거쳐 소비자의 손에 전달된다. 다수의 소비자를 겨냥한 와인은 큰 생산량을 감당하기 위해 원료인 포도의 출처 또한 다원화되게 된다. 즉 많은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를 사용해 양조를 하는 방식, 이른바 포도밭들의 블렌딩은 와인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일반적 방법이다. 이 경우 큰 생산량을 내면서도 품질의 균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생산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희소가치가 있는 고급 와인은 이러한 방법과 정반대로 보다 잘게 쪼개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큰 산지로부터 작은 산지로, 작은 마을로, 하나의 밭으로, 끝으로 특정 구획으로까지 쪼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산량은 점점 줄지만 원산지의 순수성과 우수성은 보다 뚜렷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가격에 반영된다.

최고의 품질로 알려진 고창 수박은 이를 설명하는 아주 좋은 예다. 고창 수박은 아무도 전북 수박 또는 한국 수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꼭 고창 수박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고창이라는 작은 원산지가 지니는 높은 네임밸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소문난 고급 와인산지는 점점 미세화에 열을 올리고, 따라서 점점 더 많은 종류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프랑스의 부르고뉴(영어명 버건디)는 장구한 와인생산 역사를 지니는데 성당의 수도사들이 포도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어왔다. 와인을 잘 만들면 천국에 가고 신의 목소리는 땅속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과학적 지식이 없었음에도 자기가 경작하는 땅에 대한 세밀한 이해가 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찍부터 부르고뉴 지역을 매우 정교하게 분할해 그 특징이 서로 구분되도록 했다. 작게 쪼개진 원산지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개성이 강하고 보다 우수한 품질을 갖는 경우가 많았고 거기에 희소가치가 더해져 생산량은 줄었음에도 결국에는 더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이후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됐고 와인생산의 역사가 짧은 신흥생산국도 그들의 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200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쪼개기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성숙된 업종일수록 가장 근본적인 요소에서 차별화를 할 수 있을 때만이 지속적인 성장동력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이고 차별요소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은 언제 어느 시대에서건 멈추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기업들이 사상 최고의 수출실적을 올리고 문화적으로는 한류가 세계 곳곳에 코리아란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차별성 없는 비슷한 상품과 문화 콘텐츠만을 양산한다면 그것은 일정 품질은 유지하되 별 개성 없는 대량생산된 와인을 내놓는 평범한 와인농장주가 되는 것이다. 우리 상품과 우리 문화의 가치를 높이는 일도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되고 준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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