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전쟁=파괴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음식일 것이다. 전쟁이란 때때로 새로운 음식 탄생의 기원이 되기도 하고 또는 음식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6·25전쟁의 비극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음식은 뭐니뭐니해도 부대찌개일 것이다. 햄과 소시지, 미국식 콩 통조림 등의 서양재료를 넣어 김치, 고추장과 함께 얼큰한 우리식의 찌개로 끓여낸 부대찌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퓨전요리이기도 한 부대찌개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러나 부대찌개의 유래를 보면 우리에게는 참으로 아픈 기억을 담은 음식이다. 부대찌개는 그 이름 자체로도 평범치 않다. 음식 이름에 붙기엔 좀 어울리지 않는 듯한 군 부대가 떡하니 붙어있기 때문이다. 아는 누군가는 군대에서 즐겨먹던 음식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대찌개는 군대에서 즐겨먹던 음식이 아니라 미군 부대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전쟁 후 생활이 어려워 고기를 구하기 힘들자 미군부대가 주둔했던 의정부 등에서 미군들이 먹다 남은 소시지, 햄 등을 넣어 만든 것이다. 당시에는 미국 대통령인 린든 B. 존슨의 성을 따서 '존슨탕'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6·25전쟁 시절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한 무리의 아이들이 미군 트럭 뒤를 쫓아가며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전쟁이 남긴 기억인 셈이다. 부대찌개는 그래서 전쟁을 겪은 한국인들의 슬픔을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전쟁 속에서도 그 생명력을 끈질기게 유지해 온 음식도 있다. 1945년 회사 출범과 함께 탄생한 H제과 '연양갱'은 6ㆍ25전쟁 중에도 피난처인 부산으로 양갱 솥과 보일러를 옮겨 생산했을 정도로 지난 60년 간 단 한번도 중단 없이 생산한 기록을 갖고 있다. 그 결과 연양갱은 우리나라 최장수 과자가 됐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음식들이 전쟁을 통해 탄생했다. 라면 역시 전쟁과 인연이 있다. 보통 라면은 일본에서 시작됐지만 우리가 흔히 사먹는 인스턴트 라면은 전쟁을 거치면서 탄생하게 됐다. 중일전쟁 때 중국인들이 전쟁 비상식량인 건면을 식용유지로 튀겨 보관하기 쉽도록 한 것을 보고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현재의 인스턴트 라면의 시초다.
뜨겁게 데운 육수나 물에 고기나 야채 등을 살짝 데쳐 먹는 샤브샤브도 그 기원은 전쟁이었다. 대륙을 평정하고 거대한 몽골제국을 세웠던 칭기스칸이 정벌전쟁을 치루던 당시 군인들이 투구에 물을 끓여 즉석에서 조달한 양고기와 야채를 익혀 먹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 바로 샤브샤브다.
요즘에는 6·25전쟁이 많이 잊혀진듯 싶다. 최근 한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4명이 6·25전쟁의 발발 연도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로 이제 6·25전쟁은 기억 속으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반으로 갈려있고 전쟁의 위협은 여전하다. 비록 전쟁이 음식에게는 새로운 창조의 기회가 됐다 하더라고 6·25전쟁과 같은 비극은 다시 일어나선 안되겠다.
송화정 기자 yeekin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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