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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K-우먼]정샘물 "포기 대신 일단 한번 해보자…끝까지 해봐야 성취감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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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도전 나서는 'K-뷰티 대모' 정샘물 원장
"천식으로 죽음 공포 있지만 수영 성공해 성취감"
"도전에 대충할 지는 내 선택…결과는 모른다"

'K-뷰티의 대모'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1세대인 정샘물 원장은 올해 내내 싱가포르와 한국을 오가느라 분주했다. 정 원장의 시야가 한국을 넘어 동남아시아로 향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 동남아시아 거점을 두고 사업 확장을 모색한다. 코로나19 기간에도 일본, 중국 등에 K-뷰티를 알린 그였다. 2년 가까이 고민해왔던 싱가포르 매장 오픈을 손수 챙기면서 현지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딸 둘의 육아를 병행해야 했다. '워킹맘' 정 원장은 일도 육아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한다.


[파워K-우먼]정샘물 "포기 대신 일단 한번 해보자…끝까지 해봐야 성취감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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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원장은 화가를 꿈꿨던 10대 소녀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정 원장은 1991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에 접어들었다. 당대 최고 여배우의 메이크업을 맡아 국내 메이크업 트렌드를 이끌어왔다.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연 매출 700억원대(2023년 기준) K-뷰티 브랜드 ‘정샘물뷰티’의 수장으로,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로 발돋움하고 있다.

꾸준히 도전에 나서는 이유를 묻자 정 원장은 "'나이가 많다', '육아해야 한다' 등등 해선 안될 이유는 많다"면서도 "뭐든 끝까지 해봐야 아는 것 아니겠나.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최근 본인의 가장 큰 도전이자 성취로 "수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는 미소 지었다.


- 사업과 육아를 병행하며 싱가포르와 한국을 오가느라 굉장히 바쁘다고 들었다. 해외로 도전을 이어 나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하면 (도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이해가 좀 쉬울 것 같아 말씀드린다. 싱가포르에서 아이에게 운동을 시켰다. 첫째 딸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매일 아이와 싸웠다. 아이는 수영이 싫다, 수업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 싫다고 했다.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내가 같이 물에 들어갔다. 사실 내가 천식이 있다. 물속에 머리를 담가본 적이 없다. 숨을 쉬지 못한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매일 울면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아이와 울고불고 한 6개월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싱가포르 현지에서 적응이 어려웠던 아이가 수영을 매개로 친구들과 친해졌다. 여기에 모든 이유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과정을 겪으며 포기할 것인지, 어디까지 도전을 해나갈 것인지 그러한 저의 스토리가 이 안에 다 있는 것 같다. 내가 잘나서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 K-뷰티의 선봉장으로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 과정에서 얻어내는 것이 있다는 의미인가?

▲(K-뷰티의 선봉장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최대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괴롭다. 눈물도 난다. 고통스럽기도 하다. 어떨 땐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내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은 매번 작건 크건 도전을 해야 하는데 그 도전을 제대로 할 것인지, 대충할 것인지는 내 선택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끝나는 걸 못 견딘다. 판이 깔리고 방향이 잡히면 어떻게 하겠나.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어. 근데 한 번만 팔을 더 젓자. 한 바퀴만 더 돌자." 수영을 그렇게 한다. 그렇게 하면 '해냈다'는 성취감, '건강해졌다'는 기분이 좋다. 이런 감정을 아이와도, 직원들과도 느끼고 싶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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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 사회생활을 17살에 시작했다. 한 반에 학생 68명이 있던 때인데 그 시기에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하고 낙망하고 원망하는 10대를 보냈다. 그때 당시에 연세대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최루탄이 터져서 눈앞에서 여대생이 죽고 내 앞에도 최루탄이 떨어져 기절해서 집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런데 30년 후(2016년) 연세대로 특강을 하러 가게 됐다. 내가 아르바이트했던 그곳에서 강의하게 됐다. 그때 봤던 그 큰 교문을 다시 보니 너무 작았다. 그땐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정말 커 보였는데 이젠 정말 작은 학생들이 다가와 '사진 찍어요', '사인해주세요' 하더라. 그 30년이라는 세월 안에 지금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다 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누구도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내가 믿고 가고자 하는 것을 이탈하지 않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그냥 걸어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면 현재 진행형인 도전은 무엇인가?

▲정샘물의 뷰티엔 '이것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고유의 선·색·결이 집중해야 할 중요한 파트라고 생각한다. (메이크업 중) 과장해서 디자인을 입히고 두껍게 커버해서 자신의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만들어서 보여줘야 하는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얼굴에서 메이크업을 싹 지웠을 때 그 차이가 크면 갑자기 초라해진다. 그래서 나는 본인 고유의 색을 살짝만 보완해서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지만 피부의 결과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하고자 한다. 또 고유의 눈썹결을 다 깎아내서 (남들과) 다 똑같은 눈썹 유형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눈과 눈썹결의 하모니가 이뤄져서 그 자체로 예쁘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다. 과장되게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예쁘고 그걸 스스로 믿는 순간 내면이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 말이다.


- 최루탄을 맞았던 그때처럼 인생에서 어려운 순간이 많지 않았나. 어떻게 극복했나.

▲ 판에 박힌 이야기지만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난 10대부터 위기였다. 그 위기가 기회가 됐다. 진짜 맨바닥에 박치기해가면서 배웠다. 20대도, 30대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땅바닥치고 주저앉아서 펑펑 우는 일도 많았다. 아버지가 진 수많은 빚을 언니와 해결했다. 사업하다가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었는데 날리기도 했다. 남편이 일본 화장품 회사 지사장이었는데 일본 불매 운동이 갑자기 일어나 위기가 있었다. 코로나19에도 버텼다. 가로수길이 코로나19 전에는 K-뷰티의 성지였다. 코로나19로 유령거리가 됐다. 임대료, 인건비 모두 감당하면서 버텼다. 언제 끝날지 모를 터널을 지나갔다. 결국 내가 코어 힘을 갖고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일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함께하는 사람들과) 서로 합이 맞을 때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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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사업가다. 어떤 직업이 본인에게 더 맞다고 느끼나?

▲ 나는 사업가가 아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있다. 나는 디자인이나 아트 기획 등에 발달한 사람이고 이 분야를 맡을 뿐 비즈니스적으로는 발달한 사람은 아니다. 각자 전문가가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고 그러한 팀이 구성돼 하나의 마음으로 움직여 간다.


-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라고 생각하는 것은?

▲ 54살에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웃음) 그게 최근 얻은 가장 큰 성취인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던 일이다. 그동안 일하면서 얻게 된 성취도 많았지만, 근육이 찢어질 것 같고 숨이 안 쉬어져서 눈물이 나는데 그걸 참고해낸 것에 대한 성취감이 크다. '언제든 내가 포기할 수 있으니 한 번만 더 해보자' 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50m, 100m부터 이젠 600m까지 수영을 하게 됐다. 아직도 첫 바퀴를 돌 때, 초반 20~30분은 무섭다. 그런데 30분 지나면 서서히 괜찮아진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는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는 상태로 수영을 한 것인 만큼 개인적으로 가장 큰 도전이었고 큰 성취다.


- 선후배, 동료 여성 사회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포기하지 말자. 언제든 포기는 할 수 있고 관둘 수는 있으니 일단 해보자. 그리고 자기 자신과 친하게 지내자. 내가 나를 인정하고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 줄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내 모습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어두운 면도 보인다. 이러한 어두운 면에 먹이를 주지 말고 밝은 면에 먹이를 주면 된다. 어두운 면을 단절시킬 수는 없지만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고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정샘물 원장은

1991년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시작했다. ‘투명 메이크업’을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정 원장은 당대 최고 스타였던 배우 이승연을 시작으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여배우 김희선, 고소영, 김지호 등의 메이크업을 맡았다. 이후에도 김태희, 이효리, 전지현, 송혜교 등 국내 톱스타에 탕웨이 등 세계적인 스타까지 메이크업을 담당했다. 2006년에는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라 순수미술과 해부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인 2015년에는 ‘가장 나다운 아름다움’을 앞세운 화장품 브랜드 '정샘물뷰티'를 론칭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정샘물뷰티와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정샘물 아카데미 등을 이끌고 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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