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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우리를 실망하게 하는 것들[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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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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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독일 시인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1892∼1973)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이 글은 수필가 김진섭 선생님의 아름다운 번역 때문에 정작 독일보다는 한국에서 더 유명했다. 요즘 한국에선 슈나크가 독일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시인이었고, 아돌프 히틀러에게 충성을 서약한 작가 88인 중 하나였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그를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다. 지금은 교과서에서 빠졌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구절은 한국전쟁 이후 세대 뇌리에 깊이 남아, 무언가 한탄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기승전결도 없는 이 수필 형식을 여러 사람이 차용했다.


2012년에 발간된 서강대학교 이태동 선생님의 산문집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무언가 한탄한 글은 아니다. 슈나크가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해, ‘울고 있는 아이’를 말했을 때, 이태동 선생님은 ‘웃고 있는 아이’를 말했다. 일종의 문학적 유머다. "앞니 빠진 어린아이의 웃는 얼굴이 나를 기쁘게 했다."로 시작한다. 은사님들에 대한 추억을 쓴 부분이 특히 공감이 됐다.

나는 오늘 무언가 한탄하고자 이 글을 쓴다. 나는 ‘울고 있는 아이’나 ‘웃고 있는 아이’가 아니라 ‘일부 국회의원의 철없는 행동’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래서 첫 문장은, "한 국회의원의 철없는 행동이 우리를 실망하게 했다."로 시작한다.


한 국회의원의 철없는 행동이 우리를 실망하게 했다. 민주당 소속 한 국회의원은 아무 이유 없이 소속 정당을 탈당했다가, 금방 다시 복당을 하겠다는 의사를 비쳤다. 혼자 의인(義人)인 척하는데, 그 사람이 검수완박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수를 쓴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국민을 바보 멍텅구리로 알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나라의 큰 어른이라는 사람의 무분별한 처신이 우리를 실망하게 했다. 그는 나와 같이 공자님의 사상을 흠모하여 유학(儒學)을 길잡이로 삼아 가르치는 대학교 출신이다. 공자님 가라사대 "구차(苟且)하게 살지 말라"고 하셨다. 구차함이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하지 않고,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는 것’을 말한다. 억지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 ‘회기 쪼개기’라는 편법을 동원했고, 자신의 가치와 존엄을 지푸라기처럼 가벼이 날려버렸다.

전직이 검사였다는 한 국회의원의 행동이 우리를 실망하게 했다. 예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헌법상 삼권분립의 기본 정신에도 어긋나는 시행령 통제 법안을 발의했었다. 국회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을 통제해 대통령의 통치권까지 간섭하겠다는 것이다. ‘법알못’ 경제학자라서 그랬다고 이해하자. 이번에는 사법고시까지 합격해 법을 알만한 한 사람이 더 수상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는 얼마 전 검수완박법안을 비판하는 척하더니 결국은 그 법안에 찬성해 법안 통과에 일조했다.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節槪)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우리가 실망하는 대상은 일부 국회의원이 아니라 그 일부 국회의원의 ‘행동’이다. 그리고 대다수 품격 높은 국회의원을 우리는 존경한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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