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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좋은 차와 좋은 정부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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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모델의 전통 계승해야 명차
지난 정권의 좋은 정책이라면…
지켜주는 게 성숙한 정부의 모습

[시사컬처]좋은 차와 좋은 정부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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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모델은 일정한 주기로 바뀐다. 5년 혹은 7년마다 차체와 엔진은 물론이고 디자인도 달라지는 새 모델을 발표하면서 ‘풀 체인지’라고 부른다. 그 사이에 살짝 성능과 디자인을 다듬은 모델을 내놓는데 그걸 부분 변경, 영어로는 ‘페이스리프트’라고 한다.


풀 체인지가 아닌 페이스리프트만 거쳤는데도 완전히 다른 차로 변신하는 차도 있고 새 차를 내놨는데 뭐가 바뀌었지 싶을 정도로 변화가 없는 차도 있다. 어떤 쪽이 더 좋을까? 언뜻 생각하면 많이 바뀔수록 좋을 것 같지만, 가격이 비싼 브랜드일수록 변화의 폭을 최소화하고 이전 모델의 전통을 충실히 지킨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해서 여러 브랜드의 자동차를 타봤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델은 페이스리프트, 풀 체인지 모델로 바꿔가며 탄 적도 있다. 그런 차들은 예외 없이 전통을 충실히 지킨 차들이었다.

‘포람페’라고 묶어서 부르는 포르셰, 람보르기니, 페라리가 그렇고 이탈리아의 자동차 명가 마세라티도 그렇다. 브랜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쿠페 ‘그란투리스모’는 2007년에 나온 모델이 페이스리프트만 계속 거치다가 무려 16년(!) 만인 올해 2세대 풀 체인지 모델이 나왔다. 아직 판매 전이어서 시승기는 없지만, 디자인을 보니 구형과 신형이 똑 닮은 부자지간 같다. 며칠 전에 발표된 포르셰 파나메라 풀 체인지도 마찬가지. 신차를 보고 대체 뭐가 바뀌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있어도 이게 파나메라가 맞냐며 당황하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전통을 지켜나가야 비로소 자동차에 철학과 문화가 깃드는 것이다.


반대로 신차를 발표할 때마다 전통 따위는 개나 주라는 식으로 새 모델을 내놓는 회사도 있다.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이다. 차 이름만 같을 뿐, 구형 모델은 졸지에 대가 끊긴 구닥다리가 되어버리고 중고차 가격도 크게 하락한다. 이건 고객을 배신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런 자동차에 철학과 문화가 깃들 리가 없다. 어떤 회사가 그런지는 말하지 않겠다.


우리 정부도 그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대거 폐기하는 모습이 반복되어왔다.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은 종종 그 기간이 수십 년에 걸치기에 지속성과 일관성이 핵심이다. 명백히 잘못된 사업이라면 서둘러 막아야겠지만, 지난 정권을 부정하기 위해 중단해버리는 행태는 거대한 낭비와 다름없다. 경제 정책은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해야 하고 행정이나 사법의 영역은 정권의 철학이 달라지니 그렇다 쳐도, 환경 정책까지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4대강 정비 사업이 그런 예다. 보를 막았다가 해체했다가 다시 막았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물고기들이 시위를 벌일 판이다.

일회용품 사용규제 정책이 최근 철회된 일도 의심스럽다. 정권이 바뀐 후 갑자기 환경오염 문제가 해결된 걸까? 그럴 리 없다. 혹여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사려는 의도라면 우리 국민 수준을 너무 무시한 판단이다. 여론을 봐도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친환경 정책에 따르겠다는 국민이 더 많다. 시민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이 성인남녀 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88% 이상이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고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일회용품 규제 철회에 반대했다. 그렇다면 대체 왜?


구형 모델의 장점을 계승하는 자동차가 명차로 대접받는다. 정권이 바뀌어도 좋은 정책은 인정하고 지켜주는 성숙한 정부를 보고 싶다.


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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