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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멈춰버린 주거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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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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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처럼 정부 및 여당 인사들의 부동산시장에 대한 섣부른 말들로 국민의 심기를 혼란스럽게 한 정부도 없었다. 그런데 정작 설화의 장본인들은 자신의 계몽적 시각이 국민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무척 답답해한다. 그 시각이 국민의 선택과는 심각하게 괴리돼 있는데도 말이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반복되는 실패의 근원을 살펴보면 부동산시장에 대한 편협한 이해에 기반한 계몽적 신념이 그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번 임대차 3법 시행으로 발생한 전ㆍ월세시장의 불안도 전세의 존재로 강하게 연결된 주거 이동의 연쇄고리를 무시하고, 타의적인 주거 이동을 막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설정한 점이 패착이다.


'동적(動的)인 주거 안정'이란 개념은 우리가 생애주기 동안 원하는 시점, 최적의 입지로 주거 소비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동적인 주거 소비 조정은 주거 이동을 동반하며, 나의 주거 이동은 다른 소비 주체들의 주거 이동과 연결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동적인 주거 안정은 나 혼자만의 독립적인 선택이 아니라 다른 가구의 합리적인 주거 소비의 조정 과정과 연계될 때 비로소 달성된다. 국민을 한 주택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주거 안정을 달성하는 접근 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임차 가구들의 주거 이동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은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집주인이 재계약을 거부하거나 전세가가 너무 올라서 등 정말 비자발적인 요인으로 이동하는 가구는 전체의 5~10%에 불과하다. 반면 직장의 변경이나 주거면적을 넓히려는 자발적 요인에 따른 이주가 50~60%, 그리고 나머지는 중복적인 이유에서 주거 이동을 한다. 이런 개별 가구들의 이주 요인이 합쳐진 결과로 국내 주택시장에서는 매년 전체 재고 주택의 20~30%에서 거주 가구가 바뀌면서 동적인 주거 소비 조정을 담아내는 과정이 실현돼왔다. 언급된 주거실태조사의 주거 이동과 관련된 조사 결과는 국내 주택시장의 높은 이주율을 2년으로 제한된 전세계약기간에 의한 타의적인 이주로 발생하는 비합리적인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함의를 제공한다.


현 정부는 타의적인 이주를 막음으로써 국민의 '정적인 주거 안정'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급행으로 임대차 3법을 입법화하고 그중 전ㆍ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곧바로 시행해버렸다. 그 결과는 예상되었던 통제할 수 없는 전ㆍ월세시장의 불안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계약갱신청구권제로 기존 주택에 머무르는 비율이 10% 향상됐다는 점을 이번 임대차 3법이 성공했다는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의 심각한 부작용은 이번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사 나가려고 하던 사람도 전셋집을 못 구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서 머무르려고 한다는 점이다. '패닉 바잉(panic buyingㆍ공황 매수)'에 버금가는 '패닉 스테잉(panic staying)' 현상이 현실화됐다. 문제는 그런 불안감에 선택을 바꾼 가구들로 인해 주택시장에 주거 이동의 연쇄고리가 경직되는 동맥경화가 발생해 전세 매물의 급감과 전세가 급등뿐 아니라 월세와 매매가도 들썩이는 총체적인 난국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함부로 손대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현 정부 및 여당은 실패를 인정하고 판도라의 상자를 가능한 한 빨리 닫아 쌓여만 가는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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