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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中 초등학교의 '즐거운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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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의 즐거운 기말고사 시간.

초등학교 1학년의 즐거운 기말고사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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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베이징 박선미 특파원] 한국 만큼이나 교육열이 높은 중국의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중간ㆍ기말고사가 있다. 매일 선생님이 아이들의 예ㆍ복습 지시를 철저히 해온터라 기말고사 선전포고에 바짝 긴장했다.


중국 현지 학교에서 다른 중국인들과 똑같이 1학년 생활을 하는 아이를 둔 외국인 학부모로서 가장 걱정이 되는 과목은 우리의 '국어' 격인 '어문'(語文) 이었다. 아이에게 수차례 받아쓰기 문제를 내며 받아 적고 체점하고 오답을 고치는 작업을 반복했다. 수학, 과학, 예절 등 모든 과목 시험공부가 첩첩산중이었다.

시험 당일 아이가 등교한 이후 시험 시간이 임박했을 때 학급 단체 채팅방에서 선생님이 QR코드 하나를 공유했다. QR코드를 인식하면 아이들이 시험을 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에 나타난 기말고사 현장의 모습은 아이들이 한줄씩 떨어진 책상에서 종이 시험지에 답을 적는, 원래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커다란 강당 안에 1학년 학생 전체가 나란히 줄지어 앉아 있고 맨 앞에는 커다란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화면에 문제가 나오고 선생님이 문제를 읽으면 아이들은 1~4번 중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숫자를 저마다 외치며 손에 들고 있는 리모콘의 숫자 버튼을 눌렀다. 어문, 수학, 영어, 과학 등 다양한 과목을 포괄하는 문제들이 글자 외에도 그림, 소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었다.


선생님의 "정답을 확인할까요" 라는 말이 끝나면 화면에 정답이 나오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와~"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험이라기 보다 퀴즈쇼, 축제에 가까운 시끌벅적한 기말고사였다. 아이들이 리모콘으로 입력한 숫자들은 이후에 정답과 오답으로 구분돼 성적표로 나온다. 하교 후 아이는 생애 첫 시험에 대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부모들도 재미있는 시험 방식 덕분에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더 가지게 됐다면서 좋아하는 분위기었다.

엄숙한 시험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베이징 내 많은 학교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에 한해 도입하고 있는 새로운 시험 방식이다. 중국의 지나친 교육열이 아이들을 지치게 한다는 비난들이 쏟아지자 중국 학교들이 저마다 대책마련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시험이었다.


이번주부터 시작된 겨울방학 숙제도 QR코드로 제시됐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인식하면 그동안 학기 중에 아이들이 공부했던 내용들을 복습할 수 있는 화면이 나온다. 역시 퀴즈 형식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 몇번이고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퀴즈를 맞추고 또 도전하고를 반복할 수 있다.


중국 학교들이 변하기 시작한 건 최근 들어서다.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한정된 좋은 학교에 들어가려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우등생이 되지 않으면 안됐고, 그러한 학부모들의 바람이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져 학생들을 지치게 했다. 중국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주당 평균 6시간 이상의 사교육을 시키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연간 12만위안(약 1988만원)에 달한다는 교육부 통계가 나올 정도다.


사교육 부담은 중국의 대학 입시인 '가오카오'(高考)가 가까워지는 고학년이 될수록 더 커지지만, 초등학생도 60% 이상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게 현실이다. 급기야 중국 교육부는 지난달 말 초중고생의 과중한 학업 부담 경감을 위한 30가지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1∼2학년생의 서면 숙제를 금지하고, 3~6학년은 가정에서 숙제하는 시간이 60분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 상류층의 비뚤어진 교육 현실을 담고 사교육의 병폐를 꼬집고 있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중국에서도 인기다. 인터넷을 통해 '천공지성'(天空之城)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고 있는데, 자녀 교육에 매진하는 '예서 엄마'들이 많다보니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드라마가 한국과 중국 사회에 굳어진 교육 문화를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릇된 교육관에 조금이라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중국 초등학교에서 불고 있는 '러카오'(樂考ㆍ즐거운 시험) 지향 분위기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기를 변화를 기대해본다.




베이징 박선미 특파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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