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전 재정지원 검토
원자재값 상승 지속될 경우
요금인상·자구책만 어려워
"누진제 강화방안 검토해야"
정부가 한전에 재정 지원을 검토하고 나선 것은 이대로 두면 경영 정상화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원자재 값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지면 제한된 전기요금 인상과 자구책만으로는 한전의 자본잠식 우려를 해소하기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특히 보조금 형식으로 한전을 직접지원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정 투입의 현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출자 방식보다 보조금 지원이 정부가 보유한 한전 지분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덜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보유한 한전 지분율은 51%로 출자를 통해 재정 지원이 이뤄질 경우 형평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더 커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민간지분이 49%를 차지하는 한전을 사실상 일반 기업으로 판단, 국민의 혈세 지원을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재정 지원이 이뤄지려면 우선적으로 6조원 규모의 고강도 재무구조 개선 대책 시행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공요금의 서민물가 안정 기여 필요성을 언급하며 "(공공기관이) 방만하게 운영하고 다른 가격 인상 요인을 누적시키면서 때가 되니 (공공요금을) 올려야겠다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접근해선 안 된다"고 했다. 결국 혈세 투입을 위해선 정부도 ‘명분’이 필요한 만큼 한전의 자구 노력이 있은 이후에야 정부의 보조금 지원 논의도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한전이 발행 가능한 회사채 규모의 한계도 정부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재정 지원을 통한 한전의 경영정상화가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회사채 압박이 심해지기 전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조금 지원 실행을 결정할 경우 기획재정부와 보조금 형식과 예산 등을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마른 수건 쥐어짜기’ 식 자구안도 한전의 경영 정상화에는 크게 못 미치는 미봉책일 뿐이란 점이다. 한전 자구안을 살펴보면 출자지분 매각으로 8000억원, 부동산 처분으로 7000억원, 해외사업 구조조정으로 1조9000억원, 긴축 경영으로 2조6000억원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어렵게 6조원을 마련한다 해도 한전의 1분기 영업손실(7조8000억원)조차 메울 수 없다. 한전이 올 들어 차입금을 제외한 회사채 발행만으로 한 달에 평균 3조원을 조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달도 버틸 수 없는 금액이다. 이마저도 증시가 부진하고, 금리가 뛰는 상황이라 출자지분·부동산 등의 자산을 제 값에 팔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회사채 발행 여력도 턱밑까지 차올랐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독이 든 성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주어진 자구책 마련과 전기요금 정상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전은 정부도 주주로 참여하는 민간기업 측면으로도 볼 수 있다"며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앞서 전기요금 인상 방안 등 현실적인 정책을 펼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도 "결국 연료비 상승분을 소비자가 일정 부분 부담할 수 있는 구조로 요금 체계 변화가 필요하다"며 "다만 전기가 필수재인 만큼 저소득층, 중소기업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전기를 많이 쓰면 부담이 크게끔 누진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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