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하루천자]오늘부터 나를 고쳐 쓰기로 했다<4>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편집자주몸이 지치고 자주 아프면 마음도 부정적으로 흐르기 쉽다. 몸은 물러도 마음은 단단하니까 마음이 무른 것보다 낫다며, 자신의 부족함을 미워하지 않고 돌볼 수 있기까지 저자에게도 숱한 시행착오와 용기가 필요했다. 체력과 기분 관리에 이어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 단단한 마음을 키우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나눈다. 저자는 부족함 앞에서도 삶을 긍정하며 꾸준히 성장하고자 하는 이런 태도를 ‘완벽주의’가 아닌 ‘완성주의’라고 부른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나를 고쳐 쓴다는 건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글자 수 991자.
[하루천자]오늘부터 나를 고쳐 쓰기로 했다<4>
AD
원본보기 아이콘

내가 먼저 샌들을 벗어 쇼핑백에 집어넣었다. 쭈뼛쭈뼛하던 글 친구들도 하나둘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차갑고 미끄덩한 황토를 밟자 어릴 적 미술 시간에 갖고 놀던 지점토가 떠올랐다. 찰흙이나 지점토로 무언가를 만들 때 찰기를 더하려고 손바닥에 물을 묻혀서 주물렀던 기억이 난다. 지점토 반죽은 주무를수록 점점 더 미끄덩해졌는데 물 묻은 황톳길의 촉감이 딱 그랬다. 아차 하면 넘어지겠다 싶어 열 발가락에 힘을 꽉 주며 오르막을 올랐다. 나무 밑 그늘 길이었는데도 몸에서 열이 올라왔다. 출발은 같았지만 걸을수록 사이가 벌어졌다. 앞서 가던 사람들이 멈추어 뒷사람을 기다려 주기도 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햇살이 새어들었다.


30분쯤 걸었을까. 산 중턱 즈음에 놓인 커다란 나무 평상이 우릴 맞아 주었다. “저기서 쉬었다 갈까요?” 누군가의 외침에 너나 할 것 없이 평상 위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흙이 묻은 발바닥을 달랑달랑 흔들며 초록 이파리 사이로 드러난 하늘을 넋 놓고 올려다보았다. 아토피가 심해져 회사를 그만두고 매일 혼자 뒷산을 오르던 시절이 전생처럼 떠올랐다. 달라진 점은 그때처럼 외롭지 않다는 것.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나는 더 이상 칙칙하지 않았다. 그 세상의 일부였다.

그러고 누워 있는 내가 조금 우습고 신기했다. 깔끔 떤다고 손에 흙 묻히기를 꺼리고 손수건이라도 깔아야 흙바닥에 앉던 내가, 이제는 누울 곳만 보이면 옷이 더러워지거나 말거나 등부터 들이댄다. 기회만 되면 양말을 벗고 걸으려 하며 맨발 전도사까지 자처하다니. 흙에는 경직된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마력이 숨어 있는가 보다.


몸이 아프면 자꾸만 자연과 가까워진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발바닥과 땅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물만 제거하면 되는 거였다. 내가 만약 아주 건강했다면 산을 찾았을까. 맨발로 걷고 이 좋은 사람들과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불공평하기만 한 세상에도 공평한 부분이 조금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귀여운 새소리가 들렸다.


-김선영, <오늘부터 나를 고쳐 쓰기로 했다>, 부키, 1만7500원

[하루천자]오늘부터 나를 고쳐 쓰기로 했다<4> 원본보기 아이콘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오늘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아빠·남편 찬스' '변호전력' 공격받을 듯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선…추미애 탈락 이변

    #국내이슈

  •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학대와 성희롱 있었다"…왕관반납 미인대회 우승자 어머니 폭로 "1000엔 짜리 라멘 누가 먹겠냐"…'사중고' 버티는 일본 라멘집

    #해외이슈

  •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김 여사 수사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 햄버거에 비닐장갑…프랜차이즈 업체, 증거 회수한 뒤 ‘모르쇠’

    #포토PICK

  •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역대 가장 강한 S클래스"…AMG S63E 퍼포먼스 국내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 용어]머스크, 엑스 검열에 대해 '체리 피킹'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